불안전한 세계, 안전에 대한 욕망 다뤄

인천투데이=박소영 기자 │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최근 발행한 <황해문화> 2021년 봄호(통권 110호)는 ‘21세기 인간의 조건’을 다루며 안전을 고찰한다.

021년 봄호, 통권 110호
021년 봄호, 통권 110호

새얼문화재단은 “‘안전’을 ‘21세기 인간의 조건’이라는 보다 큰 화두 속에서 다루고자 한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시대가 전환을 맞고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해방 이후 신자유주의, 난민, 생태적 재앙과 탄소경제 등 시대를 특정 짓는 문구를 나열하면 납득할 수 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황해문화는 시대의 전환을 거대한 이행의 시기라고 표현한다. 거대한 이행의 시기에서 질문해야할 핵심 쟁점 중 하나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주제라고 평가한다. 사회주의 체제 종말, 신자유주의 세계화, 난민의 일반화, 생태 재앙 예고와 탄소경제 종말, 포스트 휴머니즘 도래 등을 거대한 이행 시기로 봤다.

황해문화는 거대한 이행 시대의 인간이 처해 있는 조건과 그 조건이 강제로 규정하는 인간의 본질 등에 대한 대응방향을 담은 두 가지 가설을 세운 뒤 글 5편으로 나눠 실었다.

“신자유주의 속 인간, 자율성 강제당해”

황해문화가 던진 ‘21세기 인간의 조건’ 중 첫 번째는, 타율화의 조건 속에서 강제 받는 자율성이다. 황해문화는 근대 인간으로 만들었던 자율성의 쇠퇴를 ‘타율화의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황해문화는 “근대는 주체의 시대이며, 주체는 자율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를 위해) ‘신분적 예속’, ‘정치적 예속’, ‘인간학적 예속’에서 벗어나 평등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약속했다”며 “약속 위에 수립한 것이 국민국가이고, 국민국가는 사회·정치적 질서였고 가장 진보적 표현이 ‘복지국가 체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모순적인 이중 효과를 산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 자율성의 물질·제도적 조건으로 복지국가 기본 구조를 오해시키며, 특히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소수자, 약소자로 만들었다”며 “또한 사람들이 고도의 자율적 주체로 행위하게 강제했다. 급변하는 시대 조건에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모험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황해문화는 “▲학업 ▲취업 ▲연애 ▲결혼 ▲이주 ▲취미생활 ▲건강관리 등 일생 생활도 투자 관점에 이해하고, 성패 여부는 개인 책임으로 귀속 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기업가로 취급된다”며 “아울러 부동산·금융 투자 또한 각 개인의 필수 투자 활동이자 덕목이다”며 고도의 자율적인 주체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자유주의 속 탈인간주의 가속화”

황해문화가 던진 ‘21세기 인간의 조건’ 중 두 번째는, 탈인간주의 조건 속 새로운 정치·윤리적 규범 발명이다. 인간주의가 퇴행적 성격을 띠며 더 이상 해방 이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

황해문화는 “근대성은 인간을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여긴 동시에 우주와 자연, 역사의 주인이라고 표현했다”며 “인간주의는 바로 이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했던 근대를 지배한 이데올로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대한 이행의 시기를 맞은 것은 인간주의가 퇴행하며 더 이상 해방이념으로 역할을 못하는 것을 함축한다”며 “‘인간이 먼저다’라는 말은 진부하고 쓸모없는 문구가 됐다”고 했다.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인간이 먼저다’라는 말이 실질적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이 먼저다’라는 표현은 ▲국가 경제의 발전 ▲국제 경쟁력 강화 ▲성장 동력의 발등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감추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황해문화는 “근대를 지배한 인간주의 이념에서 벗어나 약자들이 새로운 정치 대안을 발명하는 것이 21세기 인간의 조건이다”라며 “이번 특집인 ‘안전’은 이 같은 화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은 쾌적한 환경, 편안한 주거, 안심 귀갓길, 이동의 권리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난민, 약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 요구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안전을 요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래 더욱 첨예한 갈등을 빚는다고도 했다. 황해문화는 “신자유주의는 극소수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차지하며 대다수 사람들이 적은 몫을 둘러싸고 가혹한 경쟁을 한다”고 한 뒤 “피해자 내지 약자들은 절박한 생존에 대해 (안전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자도생의 논리가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에서 안전 요구는 더욱 배타성과 차별화 모습을 보인다”며 “정규직 남성 이성애자이고 비장애인이자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요구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 더욱 실질적으로 '시민적 안전’을 보장해야”

정정훈 선생은 안전의 변증법이라는 주제로 안전의 권리에 내재한 모순을 해명하고 있다. 선생은 안전의 권리가 근대 시민혁명의 핵심적인 성취 중 하나로 자리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안전의 권리는 사실 신체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조절을 전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안전에 대한 권리는 생명에 대한 권력의 장악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치안적 안전과 구별되는 시민적 안전을 추구하는 인권의 정치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위험사회 속 ‘안전’에 대한 실존적인 토론 전개해야”

김현우 선생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핵에너지 위기라는 3중의 위기를 ‘위험사회’라는 개념에 기반해 분석한다. 선생은 코로나19, 기후변화, 핵폐기물을 보면 위험사회가 인류의 삶의 기본조건이 된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선생은 코로나19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여러 위기 중 하나에 불가하다고 말한다. 선생은 3중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되고 있는 그린 뉴딜이라는 해법은 적절하고 충분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정의로운 그린뉴딜’이라는 해법을 제안한다.

선생은 현 사회에 필요한 것은 위험사회에서 인간의 삶의 조건과 근거에 대한 실존적인 토론을 전개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위험의 불평등 구조화 되고 있어... 노동자들 연대해야”

이승윤 선생은 ‘안전의 상품화와 위험불평등의 사회’라는 제목으로 불안정 노동과 안전의 문제를 다룬다. 선생은 안전에 대한 욕구는 모든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위험에 대해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선생은 위험의 불평등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다중적으로 구조화 되고 있음을 다양한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선생은 선진국과 원청기업은 안전에 대한 내적 투자 보다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저렴한 값의 비용을 지불한다며, 결국 이렇게 외주화된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안전에 대한 구조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연대해야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무능력은 이 사회의 ‘을’들이 경험하는 무능력을 대표한다”

김도현 선생은 ‘차별, 장애화, 불안전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장애인이 직면한 안전의 문제를 살펴본다.

선생은 “비장애인에게 평범한 행위들이 장애인에게는 죽음을 무릅써야하는 장애물일 수 있다”고 안전의 문제는 사회 성원 전체에게 결코 균등하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어 “하지만 정신 장애인을 범죄화 하는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은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내몰리기도 한다”며 “안전에 대한 욕구가 우리 사회를 ‘시설사회’로 변모시키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선생은 “장애인의 무능력은 이 사회의 ‘을’들이 경험하는 무능력을 대표‧재현 하는 것이다”며 “장애운동은 어떤 존재가 ‘장애화‧무력화’되는 관계를 문제 삼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보편성 정치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이주민은 불안전한 세계 속 ‘위험의 이주화’에 직면해있다"

염운옥 선생은 안전의 문제는 배제의 정치학과 연루돼 있음을 밝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등록 체류자들이 ‘K방역’에서 철저하게 차별대상이 됐다는 점을 꼬집는다.

선생은 중국동포가 코로나19의 근원으로 혐오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정주 노동자의 4배에 이른다는 등의 사실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따라서 “이 사회의 이주민들은 위험의 외주화에 더해 ‘위험의 이주화’에 직면해있다”며 친밀한 이웃의 염려는 왜 ‘낯선 이웃’의 염려로 확장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밖에 황해문화 110호에는 비평 두편, 시와 소설들, 남재의 선생의 기고, 문화비평 글들과 네편의 서평 등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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