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부광고 교사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펴내

한 편의 시가 탄생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 장군은 구전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부터 신동엽의 ‘금강’, 조태일의 ‘내가 아는 시인 한 사람은’을 거쳐, 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4년)에도 등장한다. 90년에 걸쳐 등장한 셈이다.

저마다 시를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시를 쓴 배경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을 터.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시인이 의도한 바를 착실히 따르는 셈인지도 모른다.

현직 국어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54ㆍ부광고ㆍ사진)가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작은숲)’를 펴냈다. 이미 ‘국어 선생님의 시로 만나는 한국현대사’를 낸 저자는 이번엔 근대에 벌어진 사건을 주제로 한 시와 구전민요 등 작품 38편을 엮었다. 작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을 ‘동학’으로 봤다. 자본주의 형성이나 시민사회 성립을 근대화의 기준으로 했을 때, 백성을 하늘로 보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가장 근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동학농민혁명과 개화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와 독립군의 만주 활동 내용을 1권에 담았다.

위에서 예로 든 시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백성을 하늘처럼 섬겨라’ 편에 등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깊이 있게 다뤘다. 동학농민혁명이 왜 하필 호남에서 일어났는지부터 동학농민군의 선언문, 이후 체포된 전봉준이 직접 지었다는 유언시 등을 소개하며 현대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한 ‘혁명’의 의미를 연결한다. 특히 선언문의 ‘가난하고 소외받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는 백성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해지는 느낌을 참을 수 없다며 100년 전에 발표된 선언문인데도 그 내용이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현실과 이리도 흡사한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토로한다.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떠올리며 ‘농민들이 농사지은 논을 스스로 갈아엎을 때의 그 처절한 심정’을 헤아린다.

이렇게 저자는 시 자체보다는 시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에 더 중점을 둔다. 따라서 정형시인지 자유시인지, 운율은 어떻게 되는지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응축된 시언어를 역사적 사실로 풀어내는 데는 아낌없이 책장을 할애한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 지은 ‘달은 비록 작으나 / 온 천하를 비친다’ 이 단 두 줄의 시를 그의 삶과 연관해 책 다섯 장에 걸쳐 담아냈다.

또, 경부철도를 찬양하는 최남선의 ‘경부철도가’와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로 시작하는 ‘신고산 타령’을 나란히 실어, 당시 일본이 신문물이라 선전하던 철도가 실제 민중의 삶에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극명하게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제주 강정 구럼비 바위와 4대강 사업 등 지금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해석과 친일 행위에 대한 단죄가 국가보훈처장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과 오스트리아의 유력 일간지가 4대강 사업을 ‘완전히 정신 나간 미친 짓, 한낱 속임수’라며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는 먼 훗날, 지금 이 시대엔 모두 바보들만 살았다고 기록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저자는 이 말로 답을 대신하는데, 그 답이 오히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여겨진다.

“이 책을 쓰면서 시종일관 들었던 생각은 ‘내가 그 시절을 살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국선열들처럼 나도 한목숨 다 바쳐 싸울 수 있었을까요? 현재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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