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중국(21세기 중국인의 조각보) | 조문영, 장정아 외 | 책과함께

인천투데이=이권우 시민기자(도서평론가)ㅣ중국만큼 벼락같이 우리와 가까워진 나라도 드물다. 이념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교류가 끊긴 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났건만,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이후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덕수궁 일대에 즐비하게 늘어앉아 조잡한 중국산 물건을 팔던 조선족 풍경이 한때는 한중교류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기술격차가 현격히 줄었거나 외려 추월당하기도 하고, 우리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괄목대상이 됐다.

근대 초입에 서구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해 한낱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은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했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은 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는, 한나라 이후 유학을 통치철학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는 법가식으로 국가를 운영한 양유음법(陽儒陰法) 같은 이중성을 유지하며 체제 안정성을 꾀했다.

국가는 발전하고 통치는 단단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그 격동의 역사를 겪은 중국인민의 내면풍경은 어떠했을까? 대문자 역사만 보았지 소문자 역사는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민간중국’은 중국인민의 내상을 드러내고 있다. 책 제목이 이를 웅변한다. 국가와 한 개인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다채로운 빛깔을 모아서 오늘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해보자는 의도가 잘 배어있다.

서둘러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문화인류학의 매력에 빠질 독자가 늘어날 터다. 현장에 가서 직접 중국인민을 만나고 장기간에 걸쳐 그들과 교류하며 개인의 삶에 스며든 국가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다이족 마을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이 지역이 ‘중국의 매력적인 농촌마을’로 꼽히면서 일이 벌어졌다. 전통마을을 관광지로 만들고 인근에 새로운 주택단지를 세우자는 말이 나왔다. 젊은이는 대체로 찬성했지만, 노인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원래 살던 옛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야 조상신이 따라온다는 전통신앙 때문이었다. 만약 옮긴다면 스님을 모셔다가 마을 터를 찾아야 하고, 마을의 심장을 상징하는 자이신을 옮겨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노인들은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마을 간부의 통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점은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난다. 사회주의 혁명 초기 노동자와 농민을 존중했던 풍토는 기층 민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중국 공산당이 여전히 인민한테 인정받는 중요한 토대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발전을 하면서 지역의 간부는 부정을 일삼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어느 자리에선가 중국의 동북 지역, 특히 만주 일대가 혁명 이전에 얼마나 융성했는지 귀동냥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동북 노동자 집안을 다룬 이야기를 관심 있게 읽었다.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을 이르는 동북 3성은 한때 공화국의 장자라 불렀다.

중공업 전략기지로 신중국의 경제건설을 선도한 곳이라 그렇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화교자본이 들어온 남방 연해지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영광의 시대는 저물고 말았다. 오늘에는 중국의 내부식민지로 바라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지역의 인민이 기획한 생존전략은 자식에게 투자하기였다. 한 자녀 낳기 정책이 시행되기 전부터 한 명만 낳고 자녀 교육에 공을 들였다. 리핑도 집안의 지원으로 칭화대에 들어갔고 대학원을 마치고 은행에 들어갔다.

리핑의 결혼식 때 주례자는 그의 주소지가 베이징시 차오양구라고 크게 소리쳤다. 하객들은 부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푸순처럼 망해가는 삼류도시를 떠나 자수성가로 ‘베이징시민’ 신분을 쟁취한 것에 대한 축하였다.”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를 읽으며 들었던 인상은 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다. 왜 아니겠는가. 결국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국가는 발전하지만 불평등은 심화하고 시대변화에 민감한 사람은 성공의 길을 걷는 법이다.

과제는 권력이 불평등의 그늘을 거둬내려 하는 지다. 이 점에서도 두 나라는 닮았다. 책을 덮으면서 못내 우울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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