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장ㆍ인천해양과학고 교사)
‘구글 어스(구글이 제공하는 위성 영상 지도 서비스)’는 우리에게 독수리의 눈을 빌려 준다. 지상에 방 한 칸 없어도 신의 경지 어귀쯤으로 우리를 띄워 올린다. 그러다가 쏜살같이 내려와 먹이를 낚아채듯 동네와 골목을 종횡무진 누비게 한다.

그 눈에는 ‘헬리콥터의 시각’과 ‘현미경의 시각’이 병존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는’(윌리엄 블레이크) 예술가의 안목까지는 못 미칠지라도 디디고 선 땅을 훌쩍 넘는 개안을 맛보게 한다.

‘부평 어스’는 부평에 필요한 독수리의 눈매다. 독수리는 목표점을 찾기까지 선회 비행을 계속한다. 최대한 멀리까지 부평에서 벗어나 아득해지려는 노력이 ‘부평 어스’의 첫 번째 눈이다.

한 때, ‘부평시’를 인천으로부터 떼어 내자는 주장이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해양 인천과 내륙 부평 사이에는 경계가 또렷했다. 인천은 척박했으나 부평은 평야에 잇닿아 땅의 문화를 누렸다. 풍물대축제와 부평역사박물관에는 농경에 익숙했던 육지 부평의 과거가 있다.

서울에서 가깝다보니 불안한 바닷가와 달리 안정된 부평 문화가 이어져 왔다. 인천이 바다를 메워 해양 쪽으로 나아갈수록 부평은 과거가 되었다. 바다 쪽과 내륙의 처지가 뒤바뀌면서 인천의 뒷방으로 밀려날 바엔 ‘독립부평시’로 가자는 뜻이었다.

경제자유구역 중심의 일 점 개발 정책이 화근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인천의 미래를 위해 구도심의 현재가 저당 잡힌다는 인식이 퍼졌다. 상권은 위축되었고 문화도 힘이 빠졌다. 다른 지역이 재개발을 거쳐 번듯하게 탈바꿈하는데 부평은 전통에 붙잡혀 뒤처졌다.

하지만 움츠러들수록 시야는 좁아진다. 굳이 고유명사 부평이 아닐지라도 어느 동네든 비슷한 시야 안에서는 비슷한 경험이 반복된다. ‘독립○○시’ 혹은 ‘통합○○시’, ‘○○특구’로 이름 붙은 전국의 사업들은 거개가 다 판박이다. 새로운 유행이 된 ‘○○도시’도 명명만 앞서 간다. 부평이 독립한들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면 어슷비슷한 또 하나의 도시일 뿐이다.

바다를 메워 신도시를 만든 인천과 역사의 지층 위에 올라앉은 부평은 달라야 한다. 부수고 새로 지으면 돈이 되던 땅따먹기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때를 벗겨내겠다고 살갗을 들어내지는 않는 법, 옛 흔적을 다 지우고 ‘신장개업’하는 방식은 이제 불가능하다.

부평이 내륙이라고 하지만 높이서 내려다보면 바다 도시다. 바다에 이르려 치닫는 철로와 도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땅의 문화를 지닌 채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다른 시야가 툭 트일 것이다. 인천은 근대 개항 이후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쌓아가고 있다. ‘문학산’이 있어도 근대 인천과 단절되어 있다. 부평은 그 인천과 다르다. 근대 이후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부평의 전통이 있다. 굳이 부평과 인천을 구분하려는 시각에는 부평의 역사적 질감을 끌어안지 못하는 인천의 가벼움 탓도 있다.

‘스카이라인’으로 승부할 수 없다면 ‘골목길’이 또 다른 미래일 수 있다. ‘부평 어스’의 두 번째 눈은 실핏줄 같은 골목길의 흐름을 더듬는다.

구심이 조밀한 부평의 특성에 맞추려면 지상의 보행길과 자전거길이 골목길로 이어져야 한다. 타인을 배척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만들어 가는 ‘문화의 거리’에서 부평의 문화는 늘 ‘생성 중’일 수 있다. 사람을 지하로 밀어 넣고 자동차가 점령한 길 위로는 구불구불한 사람 냄새가 피어날 수 없다. 전통시장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안내판 활자만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길을 트게 한다. 그렇게 부대끼며 섞이는 도시라야 추억이 깃든다.

먼 훗날 누군가의 삶에 배인 추억 한 자락이 부평의 오늘을 미래의 그 어느 날과 만나게 할 것이다. 요즘 인천이 만들겠다는 미래는 화보를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사람이 들어설 여백이 없다. 인천과 바다는 물론 부평 어느 골목길, 막걸리 사발에 배인 어떤 이의 한숨까지 볼 수 있다면 그게 ‘부평 어스’의 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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