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ㅣ아무리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도 새해가 되면 몇 가지 다짐을 하게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빠지지 않는 것이 ‘핸드폰 덜 보기’이다. 핸드폰에 빠져 있다 보면 할 일을 제때 마치지 못하기도 하고, 책도 덜 읽게 된다. 하지만 다짐과는 정반대로 핸드폰 시청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고의 시간 도둑은 단연코 유튜브다. 먹방을 즐겨 보고, 동물과 인간 사이에 얽힌 찡하고 아름다운 사연에 종종 마음을 빼앗긴다. 내 관심사에 따라 자동 추천된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글은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지만, 영상은 어디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웬만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다. 그 안에 있을 땐 행복하지만 빠져나오면 왠지 허무한 유튜브의 세계. 오늘도 나는 그곳에서 허우적댄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듯, 내겐 오직 유희의 세계인 것만 같은 유튜브에서도 쾌락 이상의 값진 것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 바로 그 일을 경험했다.

유튜버 한솔 씨의 ‘시각장애인은 꿈을 어떻게 꿀까?’라는 제목의 동영상 갈무리 사진.
유튜버 한솔 씨의 ‘시각장애인은 꿈을 어떻게 꿀까?’라는 제목의 동영상 갈무리 사진.

제목의 영상이 추천 영상에 올라와 있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어떤 이유로 내게 이 영상을 안내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제목을 읽는 순간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으리란 기대감이 솟았다.

영상에선 두 성인 남성이 소주를 마시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열세 살에 시력을 잃은 28년 차 시각장애인 안승준 씨와 열여덟 살 때부터 11년째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유튜버 한솔 씨. 이들이 꾸는 꿈 이야기는 비장애인인 나에겐 상상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

축구와 오락을 좋아하던 승준 씨는 시력을 잃은 직후 매일 밤 모든 것이 생생히 잘 보이는 꿈을 꿨다고 한다. 꿈을 꾸고 싶어서 잠을 많이 자기도 했다. 10년쯤 후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반반 섞이다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더 많은 것이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한솔 씨도 비슷했다. 시력을 잃은 이후 새로 만난 이들은 꿈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경우, 꿈을 라디오 듣는 것처럼 꾼다고 한다.

이들의 수다에 나는 폭 빠져들었다. ‘보이지 않는 꿈’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솔 씨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다른 영상들도 눌러 봤다.(역시 유튜브는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눈 쌓인 길을 걷는 한솔 씨. 점자블록이 눈에 뒤덮여 지팡이와 발의 감각으로 길을 찾을 수 없었고, 횡단보도에선 도로와 차도의 경계를 파악할 수 없어 무척 위험해 보였다.

자칫 빙판에서 넘어질 때, 비장애인은 안전한 곳으로 쓰러지거나 땅을 짚는 등 부상을 막을 방법이 있지만, 이들은 그마저 불가능했다. 얼굴 피부 등 안면 감각으로 방향과 소리 등을 인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털모자를 쓰거나 귀마개를 할 수 없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한솔 씨의 유튜브 채널 ‘원샷한솔’은 시각장애인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10만 구독자를 넘겼다. 처음으로 점자로 ‘장’자를 읽고 큰 성취감을 느꼈던 일, 편의점에서 찬 기운으로 냉장고를 찾고 먹고 싶은 과자와 음료를 ‘어렵게’ 고르는 모습 등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후부터 버스를 타거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면 이따금 한솔 씨를 생각했다.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된 이 모든 것들은 시각장애인에겐 하나하나 풀기 어려운 숙제일 터. 그는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모두에게 편하고 안전하게 다시 만들 순 없을까. 정말 한솔 씨가 내 가까운 친구라도 된 듯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겐 시각장애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걸. 휠체어를 탄 친구도, 수화를 하는 친구도 없다. 인구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라는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이제는 내 곁에 한솔 씨가 있다. 아직은 추천 영상에 고양이와 백종원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솔 씨의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내가 모르던 세상으로 연결해줄 것이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유튜브 시청 시간이 줄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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