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38. 달팽이

배추에 까만 것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민달팽이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 씩이나. 유기농매장에서 산 배추를 냉장고 안에 넣어두었는데, 그 안에서 며칠을 살아 있었다니, 놀라웠다. 이 녀석들을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낼 수 없어 키울만한 마땅한 그릇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달팽이는 습하고 따뜻한 곳에서 산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밖으로 나온다. 향이 강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채소는 다 먹을 수 있어 먹이를 마련하기도 어렵지 않다. 달팽이 역사는 약 6억년 전, 고생대 초기인 캄브리아기 바다에서 시작한다. 크기만 작아졌을 뿐 초기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지질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요 달팽이들이 앞으로 살 곳은 뚝배기. 살짝 금이 갔지만, 플라스틱 그릇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뚝배기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배추 이파리 하나 넣어 뚜껑을 덮어 두었다.

달팽이가 느리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느릴까? 평균 1분에 98.2cm를 기어간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1초도 안 걸릴 거리다. 1시간이면 59.92m, 하루 종일 기어도 1.41km 밖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달팽이 중에서도 집이 없는 이 민달팽이는 지구에서 가장 느린 동물로 손꼽히는데 1시간에 48m를 간다.

달팽이 다음으로 느린 동물은 거북이다. 한 시간에 210m를 가니 무려 달팽이보다는 4배나 빠른 셈이다. 하지만 큰 덩치를 생각하면 답답한 정도는 달팽이의 4배 이상이다. 그래도 바다에서는 멋진 수영 솜씨를 뽐낸다. 같은 시간에 35km를 갈 수 있다. 육지에서 그 다음으로 느린 동물을 나무늘보. 평균 한 시간에 241m를 간다.

이런 동물에겐 느린 게 단점이 아니다. 달팽이는 물질대사가 느린 것이 더 생존을 잘 한단다. 성장이나 번식 등 다른 활동에 소비할 에너지를 더 많이 남겨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늘보는 너무 느린 덕분에 험한 야생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털뭉치나 나무의 혹, 흰개미집으로 보여 포식자가 먹잇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달팽이 세 마리와 함께 산지 세 달이 되어 간다. 길이가 1cm도 되지 않던 놈들이 살이 많이 올라 제법 통통해졌다. 배추와 상추, 양상추를 먹고 녹색 똥을 눈다. 사나흘에 한 번씩 그릇을 닦아주고 먹이도 갈아준다. 농사짓는 분들에겐 지겨운 놈이겠지만, 나는 요놈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팽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정도만 잘 지내는지 뚜껑을 열어 확인한다. 가끔 더듬이를 뻗어 어딘가로 가고 있는 달팽이의 눈을 건드려보기도 한다. 달팽이의 눈은 빛만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주에 영화 ‘달팽이의 별’이 개봉한다. 시청각장애를 가진 영찬씨와 척추장애가 있는 순호씨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24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 대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서로 손등에 각자의 손끝을 톡톡 찍어 대화를 한다. 이 모습이 마치 달팽이가 더듬이로 세상을 느끼는 것 같아 제목이 ‘달팽이의 별’이다.

나는 한 달 전부터 이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인천에서도 ‘영화공간 주안’에서 22일부터 상영한다. 이들이 세상을 만나고 느끼는 방식과 서로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벌써부터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마지막에 갑자기 영화 얘기로 빠진 것 같지만 사실 처음부터 계획해 두었다. 달팽이에 대한 상식에 영화 소개까지. 내 맘대로 좋은 의미를 붙여본다. 자,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이젠 마음이 따뜻해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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