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ㅣ‘정인이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여론이 뜨겁다. 피해자의 이름을 사건명으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글에선 “장모 씨 사건”이라 하겠다.

이 사건을 통해 입양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나 이미 편견이 공고한 ‘입양가정’에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선 안 되기에 ‘양부모’가 아닌 ‘양육자’라 하겠다. 우리 사회가 피양육자를 어떻게 여기는 지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여론의 관심이 향해야 하는 방향은 본질적인 문제의 발견과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애도와 가해자를 향한 분노만으로는 지금도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막을 수는 없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대하는 자세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가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대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권자가 피양육자를 ‘체벌할 권리’가 민법에 규정돼 있었다. 1958년 민법 제정 당시 만들어진 민법 915조 징계권은 ‘친권자는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장모 씨 사건” 이후가 돼서야 사라졌다. 62년 만이다. 이 조항은 오랫동안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훈육을 위한 체벌’ ‘사랑의 매’와 같은 주장을 할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이 조항의 유지로 개탄스럽게도 친권자 체벌에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려운 문화가 존재한다. 이웃집에서 어린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서 경찰에 신고해도 출동했다가 경고만 하고 ‘부모의 자녀 양육 방식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만 하는 잘못된 사례도 여전히 들린다.

‘체벌할 권리’라는 반인권적인 문화는 피양육자를 양육자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문화와 연결돼 있다. ‘독립된’이 아닌 ‘소유’, ‘인격체’가 아닌 ‘사물 또는 비인격체’로 피양육자를 여기는 것이다.

피양육자에게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뿐 아니라 자녀의 삶 자체를 부모가 결정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자녀의 진로, 직업, 꿈을 대신 정해놓고 그대로 살게 하려거나 혹은 그대로 살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드라마 ‘SKY캐슬’처럼 자녀를 부모 욕망과 기대를 충족시키는 도구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용인된 결과, 세계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한국은 꼴등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아동청소년 자살률이 가장 높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와 ‘자살 시도의 이유’로는 늘 성적과 가족과의 관계(부모님의 꾸중과 잔소리)가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한다.

‘장 모씨 사건’ 가해자는 아이에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폭력을 가했고 아이의 고통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이에 합당한 법적 처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가해자를 ‘예외적인 악마’로 만들거나 일부 주장처럼 사형을 시키는 것으로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다른 사건들과 같은 수순을 밟아서는 안된다. 단순히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키고, 여론에서 소비되고, 가해자의 엄벌로 끝나고,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선 안 된다. 아동학대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이 사회의 문화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법과 제도의 면에서도 아직 보완돼야 할 부분이 많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외적인 악마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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