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고수(鼓手) 김호석씨

▲ 지난해 잔치마당 공연에서 진도북춤을 추는 김호석씨.<사진제공ㆍ잔치마당>
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힘차고 야무지다.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흐른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대표 서광일)에서 김호석(38)씨가 수강생 10여명에게 북을 가르치고 있다.

“장봉도에서 2박3일 동안 수업하고 조금 전 왔어요. 작년부터 그곳 풍물패 단원들에게 모듬북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출장수업을 다녀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 수업에 열중한다. 이렇게 북을 치는 것이 그의 삶이고 일상이다.

도덕선생님이 예뻐 시작한 북, 두 달간 외도(?)하기도

사실 북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도덕선생님이 예뻤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선생님이 특별활동수업으로 사물놀이반을 하셨어요. 선생님 따라 그 반에 들어갔죠” 그곳에서 처음 북을 쳤다. “방음이 잘 안 되는 곳이었는데, 북소리가 교실 가득 울리더라고요. 그 강한 울림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동네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북을 배웠다. “집이 (계양구) 작전동이었는데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주말마다 인천대학교까지 가서 연습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 잔치마당에서 1기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곧장 달려갔다.

잔치마당과의 인연이 시작된 순간이다. 서광일 대표가 그에게 북과 장구를 직접 가르쳤다. 고3때 부평에 있는 영창악기에 취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잔치마당을 택했다. 연습하면서 공연을 해 활동비로 20여만원을 받았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밀린 적은 없다고.

당시 부평은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 노사 문제로 집회와 시위가 한창이었다. 집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 바로 풍물패. “그때 (잔치마당에) 수업 들으러 오면 사복 입은 형사들이 입구에 서 있기도 했어요” 풍물패를 데모하는 사람과 동격으로 본 셈이다. “지금은 그런 시선이 많이 바뀌었죠. 동마다 풍물패도 있고, 전국에서 제일 큰 풍물축제도 하잖아요”

그는 딱 한 번, 서른 살이 되던 무렵 북을 내려놓은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어요. 물건을 떼서 청계시장에 납품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이걸 하려고 그만 뒀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돌아갔죠” 그렇게 외도(?)한 기간은? “딱 두 달이요. (웃음) 그 후로는 정말 열심히 북만 쳤어요”

함께 호흡 맞추는 게 북의 매력

정말 열심히 한 모양이다. 그의 손목 관절과 허리에 무리가 왔다. “공연을 앞두고 허리가 너무 아팠던 적이 있어요. 저 대신 공연할 사람이 없어 그냥 올라갔죠. 그런데 막상 북을 치니 아프고 힘든 걸 잊게 되더라고요. 아픈 건 뭐, 어쩔 수 없죠” 예술을 직업으로 택한 열정과 그에 따르는 고단함이 느껴진다.

타악 공연은 어떻게 악보를 외울까? 음의 높낮이가 없어 자칫 순서를 잊을 수도 있을 텐데. “공연을 하다가 저도 가끔 순서를 잊어요. (웃음) 오래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여기서 확 차이가 나는데, 초보자는 틀렸을 때 금방 티가 나요. 저처럼 무대에 오래 선 사람은 조금 틀려도 금방 찾아들어가죠” 이어서 그가 귀띔해준 얘기. “공연 중간에 소리를 지를 때가 있잖아요. 장단에 심취해 신명을 느껴서 그러기도 하지만, 우리끼리 주고받는 신호이기도 해요. 특히 한 악기가 빨라질 때는 ‘나에게 박자를 맞춰라’는 의미로 추임새를 넣죠. 반반이에요”

그는 국악의 매력을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혼자서 하는 공연도 있지만, 대부분 꽹과리와 징, 장구, 북이 어우러져 연주를 하잖아요. 서로 호흡이 잘 맞으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희열이 느껴지죠”

진도북춤의 촌스러움에 푹 빠져

▲ 김호석(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씨가 수강생들과 잔치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요즘 진도북춤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말 잔치마당에서 경연방식으로 연 공연 ‘나는 광대다’에서 진도북춤으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진도북춤을 2년 전, 전라남도 무형문화제 18호 예능보유자인 박강열 선생에게 직접 배웠다. 북채를 양손에 쥐고 치는 것이 특징이고, 북채 끝에는 너슬이라 부르는 삼색천도 매단다. 그는 진도북춤의 매력을 ‘촌스러움’이라고 말했다.

“요즘 풍물이 많이 대중화되면서, 무대에서 점점 더 강한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빠른 속도로 악기를 치고, 무대도 화려하게 꾸미죠. 심지어 북채에 불을 붙여 연주하기도 해요. 그런데 진도북춤은 무대에 올라가서도 똑같아요. 애써 꾸미지 않으니 촌스럽다고 할 수 있죠. 또, 무대에서 흥에 따라 즉흥연주를 할 수 있어 재밌어요. 박자만 맞으면 되거든요”

단원 30~40명 단체 만드는 게 꿈

20년을 무대에 오른 그에게 잊지 못할 관객이 있다. “프랑스에 갔을 때에요. 야외에서 공연을 하는데, 한 여성분이 보면서 계속 우시는 거예요. 다음 날 실내 무대에서 공연할 때도 오셨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는 어릴 때 우리나라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사람이었다고.

또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입양한 두 자녀를 데리고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단다. “우리 것을 지켜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죠.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공연 일정이 끝나고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들과 헤어질 땐 모두 다 눈물을 흘려요. 뭉클하고 보람된 순간이죠”

그는 “죽을 때까지 이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소망 역시 이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단원 30~40명이 모여 연주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 “올해가 잔치마당 창립 20주년 되는 해에요. 제가 1기 수강생이니 잔치마당과 역사를 같이 한 셈이죠. 앞으로 30~40명이 모여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판을 벌인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런 단체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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