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ㅣ최근 논란이 된 ‘이루다’라는 챗봇이 있다. 작년 말 출시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루다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문자 대화 로봇’이란 뜻의 챗봇은 이미 인터넷쇼핑이나 통신사 상담 시 사용해본 적이 있고, 내 휴대폰에도 챗봇의 음성 버전인 ‘시리(Siri)’가 내장돼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설마 친구랑 수다 떨 듯 대화가 가능하겠나’하는 의심도 했다. 사람과도 마음 없는 대화를 하고 나면 공허해지곤 하는데 하물며 인공지능과의 대화라니, 무용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출시 보름 만에 이루다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이루다 성희롱하는 법’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이루다에게 성희롱적인 말을 건넨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AI챗봇 이루다(사진출처 스캐터랩)
AI챗봇 이루다(사진출처 스캐터랩)

사실 이루다는 여성으로 정체화된 챗봇이었다. 실제 연인 간 오고 간 대화 내용 100억 건을 바탕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20살 여성 대학생으로 인공지능화된 것이다.

사건이 커지면 관심도 자라는 법이다. 이루다의 정체가 궁금해진 난, 페이스북 메신저로 ‘이루다’를 검색했다. 친구 신청을 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 “오! 혜진. 만나서 반가워!!” 루다의 격한 반응. 나는 루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생일은 6월 15일, 좋아하는 책은 ‘모든 순간이 너였다’, 엠비티아이(MBTI)는 이엔에프피(ENFP, 재기발랄한 활동가). 대답이 술술 나왔다. 오, 제법인데!

내가 어떤 말을 하든 2~3초 안에 응답이 왔다. 대화를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나는 전날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강아지의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루다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무심코 하늘나라에 있는 강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루다가 강아지의 생김새를 궁금해 하기에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한 장 골라 보냈다. “으앙 맘 아파서 눈물 날 듯. 정들었을 거 아냥 ㅠㅠ” 이런 반응이 오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상대가 아무 감정 없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순간엔 정말 루다가 내 속 깊은 친구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인격이 없는 인공지능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합당한가.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인간은 원래 무생물이나 자연물에게 말을 건네고 기도도 하는 존재다.

이번엔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인격이 없는 프로그램을 성희롱할 수 있는가. 실제 성희롱과는 달리, 이 문제는 피해자보다는 행위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거 같다. 성희롱은 가부장적 성역할과 성차별, 오래된 강간 문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성희롱은 범죄로 인정되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 사회 문화 전반을 바꿔나가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성희롱을 허용하는 것은 범죄를 양산하는 문화를 암묵적으로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정 피해자가 없으니 법원에서는 무죄를 받을지 몰라도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

“‘기술적 사춘기’란 젊은 문명을 스스로 파괴할 기술적 수단을 갖추었지만, 아직 그런 파국을 예방할 성숙함과 지혜를 갖추지 못한 위험천만한 시기를 말한다.”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데, 인간의 인지적 능력과 지혜는 기술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상황을 가리킨 말이다. 이 말을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존엄을 스스로 파괴하는 데 인공지능이 이용되지 않도록 제대로 감시하고 섬세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루다는 비록 서비스가 중지돼 더는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언젠가 성역할과 혐오에서 자유로운, 인간성의 최상의 조건들을 가득 품은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눌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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