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Sou)│피트 닥터, 켐프 파워스 감독│2011년 개봉

인천투데이=이영주 시민기자ㅣ뉴욕에서 음악 선생으로 일하는 조 가드너. 파트타임이었던 조는 정규직 교사 발령이 났지만 썩 기쁘지 않다.

조의 꿈은 교사가 아니라 재즈 뮤지션이기 때문. 무대에서 즉흥 합주를 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어릴 적 아빠 손에 끌려 따라간 클럽에서 본 재즈 공연이 그에게 ‘영혼의 불꽃’을 지폈다.

마치 운명처럼, 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최고의 재즈 밴드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된 것. 그러나 운명의 무대를 앞두고 조는 불의의 사고로 ‘저승길’에 오르고, 조의 영혼(소울, soul)은 꿈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친다.

픽사의 영화가 다시 찾아왔다. ‘인사이드 아웃’(2015)으로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 등 인간 감정의 메카니즘과 ‘코코’(2018)로 이승과 저승의 연결을 감동적인 환상 모험극으로 그려냈던 픽사가 이번엔 소울, 즉 영혼을 주인공으로 감정보다 더 깊은 심연의 인간본성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험하며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영화를 만들었다.

‘머나먼 저세상’으로 직행하고 싶지 않았던 조의 안간힘이 머무른 곳은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무(無)의 영혼들이 다양한 프로세스를 거쳐 자신만의 ‘불꽃’을 찾아 지구로 떠나는 영혼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아기 영혼 ‘22’는 다른 순백의 영혼들과 달리 불꽃을 찾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시니컬의 끝판왕이다.

영혼의 카운슬러 ‘제로’들은 아기 영혼들이 불꽃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자 에이브러햄 링컨, 마하트마 간디,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마리 앙투아네트, 테레사 수녀 등 인류 역사상 ‘대단했던’ 인물들의 영혼을 멘토로 붙이지만, 내로라하는 멘토들도 22의 냉소에 모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굳이 지구에 가서 인간의 삶을 살 의욕이 없는 22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승으로 돌아가 꿈의 재즈 무대에 서고 싶은 조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조와 22는 ‘우당탕탕’ 이승 생활을 시작한다.

굳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22와 반드시 돌아가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던 조. 상반된 위치에 있는 둘 같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이승에서의 하루는 조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삶의 목적’에 대한 커다란 깨달음을 선사한다.

픽사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삶의 목적에 대한 어쩌면 진부한 결론을 나 같은 범인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차원의 이미지로 구축한다. 실사의 표정, 피부, 숨결까지 실사보다 더 생기 있게 구현하는 3D 기술력은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삶에 굳이 어떤 특별한 목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걸까? 22가 만났던 멘토들 만큼 거창한 족적을 남겨야만 의미 있는 인생일까?

어쩌면 내가 오늘 만난 햇살 한 줌, 허기진 와중에 베어 먹은 피자 한 조각, 우연히 빨아 문 사탕 하나의 달콤함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

22호가 굳이 인생을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했던 건, 이렇다 할 이유가 있어야만 살 가치가 있다 생각한 강박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가 가졌던 꿈에 그리던 무대에 대한 열망 역시,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지우고 나면 이뤄봤자 허탈함만 남고 이루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무의미해지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이유와 목적에 사로잡혀 지금도 시시각각 우리 곁을 지나가는 소중한 일상의 소중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년 초부터 1년 넘게 전 지구를 지배한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깨달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는 것,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함께 모여 몸을 부딪치며 교감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눈부신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너무 당연해서 당연히 주어지는 걸로 알았던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를.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 어떤 목표, 어떤 의미보다 ‘지금, 여기’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의 순간을 ‘발견’하고 누릴 것. 지금 내게, 우리에게 ‘소울’이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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