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왕가위 감독│2020년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인천투데이=이영주 시민기자ㅣ우연일까 운명일까? 같은 날 같은 아파트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첸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각자의 남편과 아내가 있는 기혼자들이다. 이사 첫날부터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부인의 가방이 각자의 배우자들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 챈다.

내 남편은 어쩌다가 다른 사람에게 끌렸을까? 내 아내는 어떻게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까?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며 각자의 배우자에게 감정을 이입해 보기도 하고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외도한 배우자들 때문에 만나게 된 만큼 첸부인과 차우는 가까워지지 않으려 애쓴다. 서로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거리를 유지하지만 만남이 반복될수록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20년 전 개봉한 이 영화는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2위,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영화 2위 등 전 세계 영화 전문 매체가 선정한 역대 최고 영화 리스트 상위권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릴 만큼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았던 명작이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화면이 가장 빛을 발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 화양연화가 작년 말 재개봉했다. 재개봉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첫 개봉으로부터 13년이 지난 2013년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이후 6년. 이번엔 4K 고화질 화면으로 리마스터링했다.

2000년 개봉 때부터 2013년 재개봉까지 극장 관람을 놓치지 않았던 팬으로서 이번 재개봉 역시 놓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기억도 빛이 바래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양연화는 화양연화, 역시는 역시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영화였고 그래서 줄거리도 명장면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봤는데도 모든 장면이 모든 대사가 모든 음악이 다 좋았다. 첫 개봉,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에 이은 세 번째 극장 관람인데 그 세 번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영화인 걸까,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영화인 걸까? 20대 끄트머리에 화양연화를 처음 만났던 나는 어느덧 50대를 바라보고 있고 젊은 날과 같은 사랑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화양연화의 첸부인과 차우를 다시 만나 깨닫게 된다. 믿게 된다. 사랑은 여전히 빛이 난다.

첸 부인과 차우가 만날 때마다 첸부인은 말한다.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 주문처럼 읊조리는 이 말은 어쩌면,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기에 외도한 배우자들과 똑같아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정언명령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란 고작 그따위 선언으로 붙잡을 수 없는 것. 차우가 말하지 않았던가.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소위 말하는 불륜. 뻔하면서도 썩 유쾌하지는 않은 소재를 이토록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2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설레게 만드는 영화는, 화양연화가 유일무이하다.

이번 재개봉판의 화질이 좋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왕가위 감독과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구현하는 화면 구도, 색감이 어느 때보다도 ‘쨍’하게 다가왔으니. 4K 고화질 스크린 위의 장만옥과 양조위는 어떤 단어,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더욱이 20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번역도 한 몫 한다. 전에 봤던 영화랑 같은 영화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목도 꽤 여럿 있다.

자, 이러니 재개봉이라고 그냥 넘길 수 있겠나. 여전히 빛나는 첸부인과 차우의 화양연화를 다시 만나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 추운 겨울을 그들의 조용하지만 뜨겁고 저릿한 사랑으로 녹일 수 있기를.

[2021.1.3. CGV인천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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