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참여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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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ㅣ책사(策士)는 권력자의 정책을 보좌하고 권력자가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그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이다. 현재의 정책보좌관 정도로, 집권자나 권력자의 곁에서 조언과 충고로 통치와 집권을 위한 계략을 짜주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책사는 그런 조언과 충고를 수용하는 주군에 의해 그 이름이 드러난다.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사로 인정받는 자는 제갈공명이다. 그의 군주는 유비였다. 유비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유선에게 바친 출사표는 제갈공명이 48세 전후에 지은 일종의 상소문이다. 제갈공명은 “죽는 날까지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다(鞠躬盡瘁 死而後己)”라고 책사의 자질을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고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주군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하고 신중했던 그는 승상이 돼 백성을 어루만지고 예법의 규칙을 제시했으며, 관직을 간략화하고 권위와 제도를 따르면서 공정한 정치를 펼쳤다. 충성을 다하고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라도 상을 내렸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는 가까운 자라도 벌을 줬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비는 자는 비록 죄가 중해도 풀어줬고, 교묘한 말로 변명하는 자는 죄가 가벼워도 벌했다. 47세에 스무 살이나 어린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세 번이나 찾아간 끝에 책사에 앉힌 유비는 뚜렷한 기반도 별난 재주도 없는 짚신 장수였으나 귀는 유난히 컸다고 알려져 있다.

출사표의 상대인 유선은 촉나라 2대로 끝낸 장본인이었는데 현명한 승상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는 도리를 따르는 군주였고, 환관에게 미혹됐을 때는 우매한 군주였다. 단종을 폐위하고 성삼문 등 충신을 사라지게 한 세조에게는 신숙주라는 책사가 있었다.

신숙주가 서생(書生)이지만 현명하고 재능이 많다는 평가를 들은 세조는 “서생일 뿐 아니라 지장(智將)이니 나의 ‘위징(魏徵)’이다”라고 극찬했다. 한 살 차이로 친한 집현전 학사로 같은 길을 걷던 성삼문 등 명분을 따른 사육신과 대비해 현실을 따른 배신자라는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으나, 재임 기간 세조의 공로에는 신숙주의 역할이 크다 할 것이다.

세조가 신숙주를 빗댄 위징은 당나라 2대 임금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정치를 잘한 왕으로 인정받는 이세민의 책사였다. 한때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기개에 탄복해 그를 발탁한 이세민이 아니었다면 아마 역사의 한 줄에도 거론되지 못할 위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징은 부하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통치자의 맹점을 찔렀다. ‘요즘 떳떳하게 의견을 말하는 자가 보이질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묻는 이세민에게 ‘의지가 약한 자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며, 곁에서 봉사한 적이 없는 자는 신뢰 없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지위에 연연하는 자는 섣불리 의견을 꺼냈다가 지위를 잃을까 몸을 사려 침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활한 지혜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모사꾼이 아니라, 직언을 서슴지 않는 훌륭한 간신(諫臣)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직간과 충언을 수용한 당태종이라는 성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에도 왕의 곁에 정도전ㆍ한명회 같은 많은 책사가 있다. 그들이 왕을 어떻게 보필했는가에 따라 역사의 명암이 갈렸다. 직언은 누구나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몸에 좋은 것은 쓰다. 권력자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그 옆에서 누가 보좌하느냐에 따라 권력자는 물론 그 조직의 운명이 달라진다.

지방행정이라고 해서 어찌 책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인천시정에 참다운 책사는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본다. 인천이 필요로 하는 책사는 어떤 책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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