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 | 작년 이맘때 나왔던 내 책이 곧 대만에서 출간된다. 출판사로부터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한 남성이 신기하게 생긴 돌기둥을 잡고 매달려 카메라를 보고 있다. 그 남성은 21년 전 대만으로 1년 기한의 일을 하러 떠났던 나의 아버지다. 아빠가 편지에 넣어 보내준 그 사진을 몇 번이나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바닷가에 사람 키보다 큰 돌기둥들이 여기저기 버섯처럼 솟아있다니. 당시 초등학생 6학년이었던 난, 세상에 정말 그런 곳이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9년은 이제 막 세계 여행이 완전 자유화된 시기였다. 국외 여행이란 걸 쉽게 꿈꿀 수 없었고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드물었다. 더군다나 나는 어렸다. 사진 속 장소가 안드로메다은하의 어느 행성처럼 기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대만 예류지질공원. 언젠가 나는 그곳에 꼭 가 보고 싶었다.

바위 모양에 대한 궁금증은 중ㆍ고등학교에서 침식과 암석의 변화를 배우면서 풀렸다. 침식은 바위나 돌, 흙 등이 물이나 바람 등에 의해 깎이거나 녹아 그 잔해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빗물에 바위가 조금씩 파이거나 강이 흐르면서 자갈 표면을 둥글게 만들거나 빙하 이동으로 땅이 파이는 모든 변화가 침식과 관련이 깊다.

이 과정에서 깎여나간 알갱이들은 어딘가에 쌓이게 마련이다. 그것이 단단하게 다져지면 다시 암석이 되고 그 암석을 퇴적암이라 부른다. 침식ㆍ퇴적과 관계없이, 마그마가 식어 굳은 화성암, 화성암과 퇴적암이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해 성질이 변한 변성암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깎이고 변하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대만 예류지질공원은 모래 알갱이가 쌓이고 다져진 사암 퇴적 지대였다. 그런데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분출돼 화성암이 사암 지대를 덮었다. 이후 물과 바람에 의해 아랫부분의 부드러운 사암층이 먼저 깎여나가고 단단한 화성암은 더디게 침식되면서 버섯 모양의 돌기둥이 남게 된다. 이렇게 어떤 암석 위에 더 단단한 암석층이 쌓여 독특한 모양으로 침식된 돌기둥을 후두스(Hoodoos)라고 한다.

예류지질공원은 많은 여행객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안타까우면서도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바위 아랫부분은 조금씩 깎이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이 싣고 온 흙 알갱이에 부딪혀 돌기둥은 점점 가늘어지다가 끝내는 쓰러질 것이다.

특히 2년 전 중국 CCTV 뉴스에 의하면, 그곳의 상징인 ‘여왕머리’ 모양의 바위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여왕머리의 목둘레가 해마다 1cm씩 가늘어져 앞으로 5년에서 10년 뒤에는 부러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2011년에 나노 과학기술로 여왕 목을 지키려했지만 9개월간의 실험에도 묘안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인위적 방법으로 여왕머리의 모양을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투명한 구조물을 만들어 바위를 덮어씌울 수도 있고, 침식을 더디게 하는 물질로 표면을 화학 처리하거나 보정물을 덧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만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의 흐름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인간의 무모함과 이기심에 절망하다가도 이런 선택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작은 희망을 느낀다.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관광객을 유치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인간의 욕심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과학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은 자연법칙과 우주 질서를 최대한 발견해 인간에 의해 틀어진 많은 것을 바로 잡는 일에 쓰여야 하지 않을까.

새해가 되면 코로나 사태도 진정될까. 한자가 가득 적힌 책을 들고서 아빠가 다녀간 예류지질공원에 가볼 수 있기를. 새해 첫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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