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Josée)│김종관 감독│2020년 개봉

인천투데이=이영주 시민기자│대학 졸업반 영석(남주혁)은 우연히 골목에서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돕는다. 고장난 전동휠체어와 여자를 리어카에 실어 집까지 데려다준 영석에게 여자는 “밥 먹고 가라”고 권한다.

영석의 친절에도 퉁명스러운 반발로 일관했던 여자가 보인 뜻밖의 친절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싫지 않은 영석은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조제.” 그렇게 시작된 영석과 조제(한지민)의 평범하면서도 낯설고 이상한 만남.

조제는 철거 직전의 재개발 구역 낡은 집에 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 안은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며 조제를 부양하는 할머니(허진)가 주워온 물건들이다.

낡은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세상은 한정적이지만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조제의 세상은 두 다리가 자유로운 그 누구보다 넓다. 영석은 낯선 조제의 세계에 끌림을 느끼고, 지금껏 책과 창 하나가 세상과의 통로 전부였던 조제는 자신의 세계에 불쑥 들어선 영석에게 불안과 설렘을 동시에 느낀다.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2003년 개봉해 많은 팬을 가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리메이크 작이다. 배경이 한국이고 17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전작과 약간의 설정 차이는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서로 끌리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냈던 기본적인 시선은 같다.

전작의 골수팬들이 많은 영화를 리메이크한다는 건 잘해봤자 본전인, 뚜껑을 열기 전에 이미 손해나는 장사다. 나 역시 이누도 잇신의 조제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팬이었다. 몇 번을 봤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조제의 몇몇 대사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줄줄 외울 정도다. 2020 조제를 만나는 것이 오히려 2003년에 느꼈던 감흥을 깨뜨릴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시국에(코로나 방역 2.5단계로 격상된 직후였다.) 극장을 찾았던 건 오로지 한지민, 남주혁, 두 배우 때문이었다.

‘미쓰백’으로 기존의 청순가련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한지민, 그리고 차근차근 쌓아가는 필모그래피가 기존의 잘 생긴 모델 출신 배우와는 다른 길을 기대하게 했던 남주혁이 만드는 조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한지민은 한지민. 자기만의 세계에 자의로 타의로 고립된, 쓸쓸하면서도 날선 조제의 아름다움이 한지민이기에 설득됐다. 바닥까지 가라앉아 웅얼거리는 목소리마저 지극히 아름답다.

남주혁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저렇게 커다란 체구를 가진 남자가 저토록 ‘무해한’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남주혁이 아니면 안 될 영석이었다. 한지민과 남주혁의 조제와 영석이었기에 두 사람의 끌림이 이해됐고, 이별 뒤의 삶까지도 응원할 수 있었다.

이누도 잇신의 조제를 떠올리지 않으려 굳이 애쓰지 않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한지민과 남주혁의 조제와 영석은 이케와키 치즈루와 츠마부키 사토시의 조제와 츠네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의 조제, 한국의 조제는 보는 내내 불편했다. 배우들 탓도, 전작의 짙은 잔향 때문도 아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기대 살 수밖에 없는 장애인 조제의 가난과 취업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지방대 졸업반 영석의 절실함, 그리고 그들이 만나고 사랑하는 철거 직전 가난한 도시의 황량함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담긴 화면이 덜컥덜컥 걸렸다.

감독이 공들여 만들었을 조제의 집(김종관 감독이 몇몇 인터뷰에서 조제의 집이 제3의 주인공이라 말한 적이 있다.)에는, 조제와 영석이 살고 있는 공간에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2020년의 현실이 없었다.

2003년 이누도 잇신의 조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씩씩하게 장을 보러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나는, 2020년 영석과의 이별 후 장애인용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 조제를 보며 ‘한국에서 부양가족도 없고 학력, 재력도 없는 장애인 조제에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부터 하고 있었다.

이 감상이 비단 17년의 시간만큼 현실적이 된 나의 까칠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완벽하게 소거한 판타지는 얼마나 허무한가. 판타지가 된 조제는 또 얼마나 슬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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