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4.7%, 지구의 경고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의 기온이 1℃ 올라갈 때마다 전염병 감염률이 4.7%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사실은 굳이 학계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시민이 인지하고 있다.

환경을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으면서 이윤의 극대화라는 원칙하에 좇은 지나친 소비주의와 성장주의는 전염병과 기후위기를 감수해야하는 ‘비용’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만을 고려하는 결정권자들은 기후위기를 멈출 의지가 없다.

코로나19는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절박한 경고음이다. 지금 당장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인류는 어려운 시대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와 활동가는 강조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존재를 멸종위기로 밀어 넣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나 탈성장과 다양성, 포함의 가치를 기반으로 생명과 공존의 시대를 열어야한다. 대대적인 변혁이 필요하며, 삶의 방식을 바꿔야한다.

47%,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죽음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망자의 47%가 시설 거주자라고 밝혔다. 전염병은 불평등하게 다가오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소수자 그룹부터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는다는 처참한 진실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 역시 시설 거주자였다. 20년 이상 장기입원 끝에 코로나19 감염을 확인한 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42kg의 왜소한 몸으로 사망했다.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구성된 세상에서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 장애인에게 “좋은 시설”이란 없다. 배제와 격리 방식이 아닌 모두 포함하는 방식으로 삶을 자속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한다.

정상과 비정상, 우열을 판단해 비정상인 사람, 열등한 사람을 구분 짓고 격리하는 사회는 구분지음을 당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분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안전하거나 행복하지 않다. 모든 이를 위한 사회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다.

90%, 나도 혐오ㆍ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민 10명 중 9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자신이 혐오ㆍ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답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 직장인은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 50일간의 투병생활을 끝내고 나와 세상과 싸워야했다. 확진됐다는 이유만으로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며 퇴사를 종용받았고, 결국 4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둬야했다.

정확한 정보 없이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식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됐으며,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는 까닭에 자신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커졌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문화가 결국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 셈이다.

93.3%, 차별을 끝내자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 ‘대구 바이러스’, ‘신천지 바이러스’라 부르고 ‘게이클럽 발’이라며 특정 정체성과 연결하려는 시도 또한 많았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훨씬 더 많이 알려진 후, ‘광복절 집회’ 이후의 확산을 두고는 ‘개신교 바이러스’라고 부른다거나 기존에 낙인을 가지고 있던 다른 그룹들에 작동했던 ‘꼬리표 붙이기’를 똑같이 행하지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정확한 정보를 알고자하는 의지를 갖고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혐오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응답자의 93.3%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회문제’로 답했으며, 차별 해소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야한다는 데에도 88.5%가 찬성했다.

차별금지법이 생긴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한 순간에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폭력인지 모르는 사회에 차별과 폭력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정체성에 의한 차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크다.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한다는 방향에 동의하는 공동체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법 중 하나다.

코로나의 해 2020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2021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차별과 폭력이 무엇인지 알리고 평등을 향해 가는 방향이 옳다는 가치를 확인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경쟁과 성장의 문법을 끝내고 평등과 인권,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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