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ㅣ1년간 2만2800명.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목숨을 잃은 세계 여성의 숫자다.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위험하게 임신 중절을 시도하다 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 사회단체인 ‘파도 위의 여성들’이 만들어졌다.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곰퍼츠가 설립한 단체로, 주요 활동은 낙태가 불법인 국가에서 임신 10주 이하 여성이 연락해오면 배에 태운 후 유산 유도약을 복용하게 하고 안전한 낙태를 돕는 것이다.

어느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바다 위에서는 선박 소속의 국가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어느 국적의 여성이 낙태를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낙태가 허용된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파도 위의 여성들’ 활동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 2018년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나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데, 임신중지에 대한 입장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낙태’가 아닌 ‘임신중지’로 단어를 정확히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를 담은 ‘임신중지’라는 단어처럼, 임신한 몸의 주인인 여성의 결정권이 우선돼야한다.

한국은 1953년에 낙태죄를 만들어 66년간 유지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가 결정됐다. 많은 여성의 바람이 이뤄진 감격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이 담긴 법이 잘 만들어지길 기다렸는데 정부 발표 시기가 늦어지면서 불안했다. 올해 10월 7일에서야 입법예고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맙소사! 형법에 있는 낙태죄를 완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단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개정안이었다. 임신중지의 형사처벌 법률은 존치시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국가가 계속하겠다는 말이다. 임신중지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다양한 어려움이 우리 사회에는 있다.

‘국민이 바라는 21대 국회 성평등 입법 과제’(한국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6.15.)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낙태 처벌 조항을 전면 폐지하고, 낙태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한다’에 응답자 82.0%(여성 87.1%, 남성 77.0%)가 동의했다.

낙태죄 폐지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안전한 임신중지가 필수의료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반대로 낙태죄가 현존하는 국가는 낙태하다 죽는 여성 숫자가 현저히 높다.

임신의 책임과 낙태의 범죄화는 왜 여성에게만 주어지는가. 사회는 왜 안전하게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인가. 자발적 임신중지를 할 수 있게 정확한 의료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여성의 건강권과 인권, 낙태로 인한 낙인 방지, 비범죄화를 이뤄내야 한다.

낙태죄 대체 입법 시한이 12월 31일로 이제 한 달 남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은 낙태죄 관련법 개정의 향방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임신중지의 당사자들인 여성들의 목소리에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누구나 자신의 성과 생산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받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