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콜(The Call)│이충현 감독│2020년 개봉

인천투데이ㅣ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서연(박신혜)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다.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집 지하실 구석에서 낡은 전화기를 찾아 연결한 서연은 대뜸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낯선 여자의 전화를 받는다. 처음엔 잘못 걸려온 전화라 생각했지만 몇 차례 비슷한 통화를 반복하며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서연은 묻는다. “거기, 지금 몇 년도죠?”

놀랍게도 전화를 건 그녀는 20년 전 서연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동갑내기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영숙(전종서). 20년이라는 시차는 있지만 같은 또래, 거기다 비슷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더해져 서연과 영숙은 전화통화로 우정을 나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이 서연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 영숙은 어느 날, 장난 반 호기심 반 서연의 과거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바뀔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영숙이 움직이는 순간, 죽었던 서연의 아버지는 살아 있고 틀어질 대로 틀어졌던 엄마와의 사이도 화목한 것으로 현재가 바뀐다.

이제는 서연이 은혜를 갚을 차례. 옛날 신문기사를 뒤져가며 20년 전 영숙의 행적을 쫓던 서연은 영숙에게 닥칠 끔찍한 비극을 미리 알려줘 영숙이 위기를 모면하게 한다.

자, 서연과 영숙이 서로 도왔으니 둘 다 행복해지면 참 좋았을 테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흘러간다.

올해 초부터 개봉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넷플릭스에서 온라인 개봉을 하게 된 이충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콜’은 제목 그대로 우연한 전화통화로 시작된 인연이 과거를 바꾸고 그것이 현재까지 뒤집어버리는 상황을 긴박하게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로 꽤 익숙해진 타임워프(시간 왜곡) 형식으로 동갑내기 서연과 영숙은 1992년생과 1972년생, 20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이 차이는 낡은 전화기를 통해 동시성을 갖게 되고 과거와 현재는 뒤섞인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뀐다는 인과법칙은 서연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 끔찍한 미래를 알게 된 영숙이 폭주를 시작하면서부터 극한의 공포를 낳는다. 그전까지는 각자의 불행으로 어두웠던 20대 여자들이 시간을 초월해 우정을 나누는 청춘물(?) 느낌마저 났던 영화 ‘콜’은 거침없이 폭주하는 악마 영숙과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서연의 추적극이자 공포물로 바뀐다.

보는 내내 너무 무서워 정지를 누르고 싶으면서도 다음이 궁금해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으니 장르적 재미는 확실히 잡은 영화지만, 그보다 더욱 감탄스러웠던 것은 전종서의 영숙이었다. 영숙은 일말의 동정심으로 관객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없이,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폭주하는 최종 빌런이다. 우리가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자비 없고 이렇게 거침없는 여자 빌런을 만난 적이 있던가?

아주 복잡하거나 정교한 플롯이 아닌데도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에서 빌런 영숙의 폭주가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박신혜의 서연이 있다.

무표정의 시니컬했던 서연에서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후 가부장질서에 딱 들어맞는 사랑스러운 서연으로, 영숙의 폭주가 시작되며 악다구니에 받쳐 발악하는 히스테릭한 서연으로 변화하는 박신혜는 서사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질주하는 영숙의 악행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여기에 영숙과 서연이 가진 불행의 씨앗이라할 수도 있는 영숙의 신(神)엄마 이엘과 서연의 엄마 김성령은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엄마로부터 비껴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런 류의 스릴러에서 언제나 처참한 희생자에 머물렀던 여자들이, 그래서 벌거벗겨진 시체로나 출연하는 게 전부였던 여자들이, 영화 ‘콜’에서는 최종 빌런이자 극 전체를 끌고나가는 주인공들이 된다. 그것도 아주 짜릿할 정도로 멋있게. 그것만으로도 영화 ‘콜’은 기립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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