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 | 며칠 전 엄마네 집에서 방석을 하나 가져왔다.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고양이 미미와 코코가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코코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휙 가버렸지만 미미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주의 깊게 코를 킁킁거리더니 냉큼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이거 좋은데. 나 좀 앉아도 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방석은 원래 내 것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이 좁아 내 물건들을 엄마한테 맡겨뒀다. 이번에 엄마가 이사하면서 내 짐을 정리해야했고 상자 속에서 이 방석을 발견했다. 오래되고 낡아서 버릴까 했지만, 방석에 연하게 남은 노란 얼룩을 보고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건 몇 해 전 눈을 감은 내 강아지 리치의 흔적이다. 천이나 이불을 좋아했던 리치에게 방석을 사 줬는데 하도 오줌을 싸는 통에 아무리 빨아도 얼룩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석에 편히 앉아 앞발을 핥는 미미를 보니 리치가 그리워졌다. ‘혹시 미미는 리치의 환생일까?’ 길에서 울며 돌아다니는 미미를 데려오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아주 터무니없는 짐작은 아니다. 불교의 윤회 사상을 믿든 안 믿든 과학적인 관점, 우주적인 입장에서도 그렇다.

태초에 빛이 있었으니 우리가 빅뱅, 대폭발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138억 년 전 그 빛 속에는 세상에 처음 태어난 입자들이 뒤엉켜있었다. 양자와 반양자, 전자와 양전자들이 부딪쳐 뭉치고 깨지는 동안 우주는 계속 팽창했다. 우주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소립자에서 수소 원자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은 점점 자라났다. 수소 구름은 주위 물질을 끌어당겨 점점 큰 덩어리가 됐고 회전으로 내부 밀도와 온도가 높아졌다. 내부 온도가 약 1000만 도에 이르렀을 때,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헬륨으로 변했다.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면서 빛을 내는 하나의 구체가 된 것. 우리는 이것을 별이라 부른다.

별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연거푸 일어나 헬륨과 탄소, 산소 등 무거운 원소를 끊임없이 생성해낸다. 그러다 폭발로 한순간에 흩어져버린다. 별에서 나온 무거운 원소들은 뭉쳐서 다시 별이 되고, 별들의 거듭된 폭발로 태양과 지구, 화성, 북두칠성, 은하수 등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복잡한 화합물들이 생겨나고 지구에선 생명이 탄생한다. 내가 먹는 밥과 채소, 코로 들이마시는 산소와 내쉬는 이산화탄소, 내 피부와 옷, 핸드폰과 노트북까지, 이것들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는 모두 별에서 왔다.

모든 것은 다시 흩어진 뒤 대물림돼 새로운 물건과 생명으로 재탄생한다. 그러니 리치의 몸을 구성하던 모든 원자는 지금 어딘가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 중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다시 생명을 이루는 물질이 된다면 환생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뼈아픈 진실이 남아있다. 흩어진 원자들이 재분배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미미를 만난 건 리치가 떠난 뒤 1년 반 지났을 때였다. 미미의 몸 안에 리치를 구성하던 원자가 포함될 확률은 아주 낮을 수밖에 없다. 애교 많고 순한 성격, 사소한 행동과 빼어난 미모가 아무리 서로 닮았다고 해도, 과학적 진실을 외면할 순 없다.

가느다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리치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숨이다. 리치와 함께 했던 15년 동안 우리가 공유한 숨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 몸 어딘가에 리치의 흔적이 남아 있진 않을까. 어쩌면 리치가 내뱉은 숨이 또 다른 생명의 호흡기를 거쳐 지금 내 주위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 코로나 시대엔 이마저 위험한 일이 돼버렸지만, 내겐 그리움과 낭만을 부르는 행위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