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ㅣ최근 비혼 여성인 사유리가 일본에서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여러 가지 논쟁점이 부상했다. 먼저 한국에서 정자 기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혼 여성에게 정자 기증과 인공수정ㆍ체외수정과 같은 보조 생식술이 불법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통로를 찾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장치들은 난임 ‘부부’를 위한 것으로 비혼자는 우선순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정부에서는 임신을 보조하는 정책의 적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비혼 남성의 대리모 문제나 동성 부부의 임신 장려 정책까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유리의 사례와 그에 대한 반응을 통틀어 볼 때 다음의 사실이 도출된다. 임신과 출산을 위한 일련의 제도들이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구축돼 정상가족 규범에 부합하는 구성원에게만 제공되고 있다는 것.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이성애자 남녀가 결혼이라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뒤 어머니 여성이 임신ㆍ출산해 낳은 아이로 구성된 세대를 ‘보통 가족’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에는 이러한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꼭 혈연으로 엮여있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다. 입양ㆍ재혼 가정 등이 그러한 사례이며, 임신ㆍ출산과 관련해서는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한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허용하는 비혈육 가족의 형태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성애자 부부와 그들의 아이로 구축된 공동체.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임신과 출산은 반드시 결혼과 연관된 과정으로, 출산은 어디까지나 여성의 몸으로 하는 것이란 굳건한 믿음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유리의 사례는 결혼과 임신ㆍ출산이 별개로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남성 가장이 없이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모자 공동체 성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탈 가부장 중심 공동체로서 ‘가족’이란 공동체가 다시금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나아가 더 살펴야할 것은 출산과 여성 정체성 간 연관성이다. 그간의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임신ㆍ출산과 양육을 여성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일로 보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공동탁아소운영에 대한 주장이 한 예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 활동과 관련해 여성을 가부장제에 복역하는 성 역할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리모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대리모를 제도화했을 때 과연 여성의 신체가 성 고정관념에 기초한 재생산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단 ‘여성=자궁을 지닌 자=임신과 출산’이란 도식 속에서 모든 여성에게 일정하게 요구되는 인식을 비판적으로 숙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면밀히 살펴볼 만하다.

여기에 이어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늘 ‘여성’화돼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최근 영국에서 자궁을 유지한 트랜스젠더 남성이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아 화제가 됐다. 그는 출산 등록에 자신을 ‘아버지’나 ‘부모’로 기입하기를 원했으나 사법부는 일반적으로 출산을 한 사람은 산모로 규정하고 있기에 ‘어머니’로 등록된다고 밝혔다.

한 개인의 성 정체성과 부모로서 정체성이 별개라는 주장 안에는 젠더가 생물학적 신체에 귀속돼있다는 뿌리 깊은 믿음이 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젠더를 다양하게 사유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로서 동성 부부, 트랜스젠더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공동체 등을 받아들이는 오늘날에도 여성과 신체는 여전히 사회적 구속의 대상이 아닌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키워드

#출산 #공동체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