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남주 시인 부인 박광숙 선생, 남민전 사건으로 해직
“20년 뒤 복직해보니 전교조 학교민주화 기여한바 커”
“언론인도 원상회복 이뤄져···교사만 그대로, 불공정해”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1989년,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시절에 교육 민주화와 참교육 실천에 앞장선 교사들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를 이유로 전교조 교사 47명이 구속되고 1794명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중 전교조 탈퇴 각서를 거부한 교사 1527명이 해임됐다.

이들은 김영삼 정권 시절 ‘조건부 복직’ 방침에 따라 1994년 교단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복직 형태는 원상회복이 아니라 신규 채용 방식이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해직교사들은 복직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해직된 기간은 그저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군사정권이 행한 폭력의 피해자는 이처럼 많이 남아있다. 1989년 전교조 해직 사태에 국한된 게 아니어도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유독 교사들은 아직도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다.

박광숙 선생. 고 김남주 시인이 그의 남편이다.
박광숙 선생. 고 김남주 시인이 그의 남편이다.

전교조 해직 사태 이전 1979년에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ㆍ해직

남편 김남주 시인과 사별한 박광숙 선생을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현재 그는 100세가 다된 아버지를 혼자 모시며 살고 있다. 그 또한 김남주 시인처럼 민주화 운동을 했으며, 해직교사 출신이다. 2012년에 인천 강화도에서 교직생활을 마쳤으나 교직에 몸담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박 선생은 전교조 결성보다 10년 전인 1979년에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을 계기로 해직됐고, 전교조 교사들보다 한참 늦은 1999년에 복직됐다. 그는 “교사들만 끝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선생은 1974년 경기도 양평에서 국어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명성여자중학교에 재직하다가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뒤 해직됐다. 이후 재판을 받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남민전은 엄혹했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반유신과 민주화ㆍ민족해방을 목표로 1976년 결성된 조직이다. 남민전 사건은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과 더불어 유신 시절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꼽힌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조금만 모여도 단속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간첩으로 몰려 체포되는 일이 빈번했으니, 지금 같은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남민전은 지하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박 선생은 당시 남민전에서 활동한 사람이 70여 명이었다고 기억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고 김남주 시인을 비롯해 홍세화 전 노동당 대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재오 전 국회의원 등이 활동했다. 이 중에는 박 선생을 포함한 교사들이 따로 모여 교육운동을 펼쳤다.

박 선생은 남민전 선전물 <민중의 소리>를 만드는 일을 김남주 시인과 함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서로 이름조차 몰랐고 상대방의 신상을 서로 알게 된 것은 체포 후 재판 과정에서였다. 박 선생은 김남주 시인의 의연한 모습에 감동했다.

고 김남주 시인.
고 김남주 시인.

“교사 복직까지 20년…전교조가 만든 변화 체감해”

7개월 옥살이 후 박 선생은 바로 운동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교사로 복직할 수 없었으니 생계를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했다. 운 좋게도 대학 시절 선배의 추천으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산하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일할 수 있었다.

1980년대는 인구 조절이 사회적 이슈였다. 정부는 산아 제한 정책과 관련한 홍보를 펼쳤다. 박 선생은 이와 관련해 TV 매체에 방송 원고를 제공하는 일을 맡았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함께 운동했던 동지들을 따라 2년간 빈민운동에 뛰어들었다.

박 선생은 빈민촌에 직접 들어가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했다. 또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활동도 펼치며 김남주 시인을 비롯해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양심수들을 도왔다.

김남주 시인은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9년째 복역 중이던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박 선생은 옥바라지를 했고, 둘은 1989년에 광주에서 결혼식을 했다. 슬하에 아들 하나를 남겨두고 김남주 시인은 1994년 2월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그 이후 박 선생은 강화도에 농사꾼으로 정착해 자연이 주는 편안함으로 상실의 아픔을 이겨냈다. 강화도 생활을 정리한 수필 ‘빈 들에 나무를 심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0년, 전교조 합법화 조치와 함께 해직된 지 20여년 만에 복직하게 됐다. 강화도에 살고 있었지만, 해직 당시 재직한 학교로 복직해야한다는 정부 방침으로 서울 경서중학교에서 한 학기 근무하고 검단중학교로 옮겼다. 2002년부터는 계속 강화도 내 학교에서 근무했다.

박 선생은 복직과 동시에 전교조에 가입했다. 수십 년 만에 교단에 돌아와 보니 전교조 교사들 덕분에 학교 분위기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보다 확실히 달라졌다. 함께 복직한 전교조 교사가 많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학교 분위기가 상당히 민주화됐다는 것을 느꼈어요. 과거에는 교사들이 위축돼있는 모습이 만연했죠. 학교 관리자에게 요구 사항을 전혀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집단으로 모여 본인들의 주장을 펼치더군요.”

박 선생은 강화여고에서 당시 만연한 0교시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새벽같이 학교에 나와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안쓰러웠다. 동료 국어교사와 함께했는데, 국어교사만 둘이 빠지니 학교 수업에 차질이 생겼다. 다른 교사들의 불만도 나왔다.

박 선생은 한 발 물러서 0교시에 참가하기로 했다. 다만 일반 수업이 아닌 그 수업 시간에 책을 정해 읽게 했다. 일종의 독서운동인 셈이다. 같은 국어교사들과 책을 정하고 책 내용을 중간ㆍ기말고사에도 출제했다. 이는 입시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고, 강화도 지역 다른 학교에도 퍼졌다.

“부당해고 피해 원상회복 일반 상식…교사만 제외돼”

박광숙 선생.
박광숙 선생.

박 선생은 엄혹한 시절 전교조 탄압으로 피해를 본 가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가족 구성원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감된 교사의 사례도 이야기해줬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공포심이 가정까지 파탄 낸 것이다.

전교조 1호 해직, 1호 구속 교사였던 신맹순 선생은 초대 전교조 인천지부 지부장이었다. 해직 당시 47세였고, 현재는 백발의 노인이다. 자녀 4명을 둔 가장이었던 만큼 해직 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는 현재 위암 투병 중이다.

또한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미임용 기간 호봉ㆍ연금 등이 인정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해직으로 인해 연금 지급 기준 임용기간을 충족하지 못해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교사가 30명이 넘는다. 이들의 복직은 정부의 부당한 폭력을 인정한 결과였지만, 원상회복은 31년째 되지 않고 있다.

박 선생도 퇴직금만 받았을 뿐 연금은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교사의 연금 수령 기준이 재직기간 20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바뀌었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박 선생은 해당되지 않았다. 교사는 별정직이라는 이유로, 과거 직장에서 경력도 인정받지 못했다.

박 선생은 “해직교사들의 원상회복은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정당하게 사죄하는 것이다. 과거 언론 통폐합 당시 언론인들에 대한 원상회복도 완료됐다. 교사들만 아직 상황이 그대로인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운동 과정에서 해고를 당해도 복직하면 해직 기간만큼 임금을 보전 받는 게 일반적인 사례다. 교육 행정직들도 관련 기관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기도 하는데, 해직교사들은 유일하게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2004년, 해직 기간 호봉 인정 등 명예 회복의 구체적 내용을 통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 구체적으로 이행된 내용은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증서뿐이었다.

지난 17일 강득구(민주당, 안양시 만안구) 국회의원은 ‘해직 교원 및 임용 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동료 의원 113명과 함께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해직되거나 임용에서 제외된 교원들의 지위를 원상회복시켜 호봉ㆍ보수ㆍ연금 등의 불이익을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돼야 민주화운동과 전교조 활동 등으로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들의 지위가 원상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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