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

인천투데이ㅣ굴업도는 섬 형태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낚싯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해수욕장이 유명하고 최근에는 백패킹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천혜의 아름다운 섬이지만 1994년에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지정됐다. 격렬한 찬반 대립 끝에 지정은 철회됐다. 핵 폐기장 건립 반대 투쟁에 이어 이제 해상풍력발전으로 새로운 갈등의 중심에 서있다. 굴업도의 운명은 왜 이리도 슬플까. 인간의 탐욕이 낳은 비극이다.

산업자원통상부는 씨앤아이레저산업(주)이 신청한 해상풍력발전사업을 9월 22일 허가했다. 이 사업은 1조3230억 원을 투자해 굴업도 서쪽 해상에 2024년 2월까지 233.5㎿ 규모의 해상풍력발전소(5.56㎿ 발전기 42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연간 발전량 55만3196㎿h 규모이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의 최대주주(지분 51%)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30) 씨이고, 나머지 지분도 이 회장의 자녀 등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해상풍력발전사업 진출은 20~30대 재벌 4세 가족 회사가 돈 벌기 쉬운 정부의 해상풍력 정책에 편승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연간 1880억 원(20년 누적 3조7600억 원)의 장기 고정수익이 예상된다.

CJ그룹은 이 회장의 지병으로 이선호 씨에게 경영 승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 4세인 그는 지난해 9월 액상 대마초 밀반입으로 적발돼 긴급 체포됐다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때에도 재벌 봐주기 특혜 시비가 일었다. 이번 해상풍력발전사업 허가 과정에서도 특혜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올 3월에 개정된 해양환경관리법은 9월 25일 시행됐다. 이 법에 따른 ‘해역에 대한 영향평가’는 발전소 건설이 해역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법 시행으로 사업자는 산자부에 해상풍력발전사업 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이러한 영향평가를 실시해야한다. 그런데 이 사업을 심의한 산자부 전기위원회는 법 시행을 불과 며칠 앞두고 허가했다.

또한 해양공간법에 따르면 발전소는 에너지개발지구에 들어서야한다. 인천시는 지정 고시를 위해 최근 산자부와 함께 공청회까지 마쳤으나 아직 고시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 산자부는 기존 전기사업법으로 허가했다.

이에 대해 전기위원회는 “‘해양 공간 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의 ‘해양용도구역’은 같은 법 제12조의 규정에 의거 해양 공간 특성 평가 결과 등을 고려해 변경도 가능하고, 발전사업 허가 시 반드시 ‘해양용도구역’이 에너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만 허가를 요구하는 법률 규정은 없다”라고 밝혔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교묘히 빠져나간 것이다. 한마디로 꼼수다. 그밖에도 계측기 유효지역 부적정(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덕적도 해상풍력발전 부지 중복과 풍황 간섭 우려와 지역 수용성 확보(옹진군), 어민 갈등과 해양생태자원 훼손, 여객선 안전 운항 문제(해수부) 등 관계기관의 의견도 입맛대로 해석하고 “앞으로 하겠다”라는 식으로 조치 계획서를 제출했다.

재벌이 신청하면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것이 능사인가? 과연 이런 법률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산자부는 신중하지 못한 행정처리였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사업 중복성 문제도 있다. 이 해역과 인접한 옹진군 자월면 초지도와 덕적면 굴업도 인근 해상에 인천시와 옹진군, 한국남동발전(주)가 또 다른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동발전(주) 등은 무의도 서쪽 8㎞, 굴업도 남서쪽 6~7㎞ 부근 해상에 각각 300㎿씩 총 600㎿량을 생산하는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남동발전(주)은 8~9㎿급 발전기를 두 지역에 각각 40기 안팎으로 지을 예정이다.

이로 인해 덕적도와 굴업도, 초도 등 인천연안 해역이 해상풍력발전으로 뒤덮일 지경이다. 그러므로 해양생태 환경 문제와 어민 피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전제돼야한다.

허가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주민수용성이다. 해당 수역을 이용하는 지역 어민과 섬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와 충분한 논의도 없이 허가를 신청했고, 뒤늦게 옹진군이 문제제기하자 소수 주민만을 대상으로 자료 제출도 없는 상태에서 설명회를 형식적으로 해치워버렸다.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등 어업인들은 8월 25일 일방적인 해상풍력발전소 건립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서명운동에 돌입해 50여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해상풍력발전사업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는 전남, 전북, 인천 등 전국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인천시는 얼마 전 겪은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사업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전라남도는 11월 5일 ‘신안 해상풍력 민관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이 민관협의회는 어민 대표와 주민 대표, 해양수산부와 전라남도 관계자, 국회의원 등 31명으로 구성됐다.

인천에서도 반대운동이 본격화됐다. 섬 주민과 어민들, 시민단체들이 ‘인천 해상풍력발전 대책위원회(준)’을 발족했다.

대책위는 성명에서 “굴업도는 주민, 시민, 학계, 시민단체, 법조계, 종교계 등 지역사회가 핵으로부터 인천의 바다를 지킨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런 굴업도 바다에 지역사회와 협의도 없이 여의도 면적의 12배도 넘는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설치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덕적도, 초치도 남동발전 해상풍력발전사업도 인천시 비호 아래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이 역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과 어민들을 배제한다면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인천시와 정부는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즉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한다. 에너지 정의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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