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 | 올해 봄에 새로운 취향이 하나 생겼다. 탄산수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음료라면 물 이외에 딱히 즐기는 게 없었다. 임신한 친구가 맥주 대신 집어든 탄산수를 옆에서 나눠 마시다가 그만 탄산수의 톡 쏘는 청량함에 빠져버렸다. 이후로 동네 슈퍼에 갈 때마다 탄산수를 꼭 챙겨들었다.

나중엔 한두 병씩 사 오는 게 귀찮고 감질나 아예 24캔 한 상자를 주문했다. 튀김이나 고구마 먹을 때, 글이 잘 안 풀릴 때, 달리기하고 돌아와 목이 마를 때,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수시로 캔을 땄다. 당분이나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아 몸에 나쁠 게 없으니 맘껏 마셔도 부담이 없었다.

탄산수의 매력에 취해갈 무렵, 어떤 기사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탄산음료가 치아를 부식시킨다는, 오래전부터 한 번씩 반복해서 신문에 실리는 내용이었다.

최근엔 탄산음료를 마신 후 최소 30분 후에 양치질을 해야 치아 손상을 덜 수 있다는 정보가 추가됐다. 내가 마시는 건 탄산‘음료’가 아닌 탄산‘수’니까 괜찮지 않을까,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내가 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탄산음료에서 중요한 건 ‘음료’가 아닌 ‘탄산’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탄산수는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는 물이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아 들어가면 수소이온 두 개가 생기는데, 수소이온농도(pH)에 따라 액체의 산성도가 결정된다. 순수한 물의 pH를 7로 정하고 이를 중성으로 삼아, 이보다 숫자가 적으면 산성, 많으면 알칼리성이라고 부른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녹을수록 액체는 산성을 띤다.

치아의 가장 바깥 면은 법랑질이라 불리는 단단한 조직으로 돼있다. 그런데 이 법랑질은 pH 5.5 이하의 액체에서 녹고 만다. 탄산수와 탄산음료의 pH는 2.5, 오렌지주스가 2 정도이니 탄산수의 산성도는 꽤 높은 편이다. 탄산수를 마시면 법랑질이 녹고 치아가 상할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탄산수만 문제가 아니다. 산도가 4에서 4.5 정도 되는 시판 맥주에도 치아는 부식될 수 있다.

그래도 탄산이 든 음료는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액체 속 이산화탄소가 기체로 튀어나오기 시작해 치아 부식 정도가 조금씩 약해진다. 탄산은 없어도 유기산 성분이 가득한 주스에도 치아는 손상된다. 만일 주스에 설탕까지 첨가됐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설탕은 입속 세균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세균은 설탕을 먹고 부산물로 산을 만들어 치아의 법랑질을 또다시 공격한다.

그렇다고 탄산음료나 맥주, 주스를 먹을 때마다 이가 썩고 녹아 사라지는 상상에 괴로워해야 할까. 치아를 생각하면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삶의 재미를 아예 포기하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몸에 하나 믿을 만한 게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침이다. 건강한 상태에서 침은 끊임없이 침샘에서 흘러나와 입안 곳곳을 적신다. 침이 평상시 하는 역할은 입안의 세균을 씻어내고 pH를 중성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게다가 침에는 칼슘과 인산염, 불소가 들어 있어, 치아의 손상된 법랑질을 복구한다. 또 침에 포함된 어떤 단백질은 법랑질을 코팅해 산을 차단하기도 한다.

치아에 좋지 않은 음료를 마신 뒤 곧장 양치질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침 때문이다. 치아의 손상된 표면에 치약의 연마제가 닿으면 표면이 더욱 거칠어지고 치아의 무기질 또한 더 많이 떨어져나간다. 침이 치아 표면을 충분히 다독인 뒤 양치를 하면 그나마 더 큰 부식을 막을 수 있다.

탄산수를 마실 땐 최대한 이에 닿지 않게 하기. 곧장 물로 입안을 헹구고 30분에서 1시간 기다린 후 양치질하기. 그리고 하루 한 캔을 넘기지 말기. 꼭 기억하고 지키기로 했다. 탄산수를 오래 즐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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