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경 교사 겸 사진작가, 취미로 시작한 예술...제2의 삶
지난해 철거민 아픔 담은 사진집 ‘청계천 탱크’ 펴내기도
“사회적 약자 관심 커...인천 이주노동자 목소리 담을 것”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처음엔 단순하게 접근했던 취미활동이 직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타고난 재능을 늦게 발견했거나, 개인사정으로 잠시 꿈을 미뤄뒀거나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예술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안미경 작가는 인천 부평 미산초등학교 교사이자 종합 예술인이다. 처음에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기회가 돼 전시회까지 개최했다. 그림만으로는 갈증을 느꼈는지 그림 작품에 문학적 감각을 가미해 그림시(시화) 전시회도 열었다.

지난해에는 사진으로 영역을 넓혔다. 청계천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글과 함께 <청계천 탱크> 사진전을 개최했다. 세 번의 전시들은 모두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림·시·사진을 모두 아우르기에 안 작가는 본인을 ‘시각예술가’라고 소개한다.

안미경 교사 겸 사진작가.
안미경 교사 겸 사진작가.

예술적 갈증 점점 커져...그림·문학·사진 능통 ‘팔방미인’

안 작가는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교사가 되기로 결심해 교대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국어교육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곳인 만큼 다양한 과목을 배워야 했는데, 이중 교양미술 시간에 큰 흥미를 느꼈다.

“교양미술 수업 시간에 석고 데생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시면 밤새 그리기도 했죠. 그때부터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느꼈어요. 교사가 된 후에도 흥미를 잃지 않고 그림을 틈틈이 배웠죠. 처음부터 해보고 싶었던 추상화도 그리게 됐어요.”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추상화를 그리게 됐으니, 어느 정도 예술가로서의 발을 뗀 셈이었다. 그 이후 안 작가는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꾸준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 작품들은 우연히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픈 한 미술관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됐고, 안 작가는 전시회 제안을 받게 됐다.

이후 틈틈이 작업하며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고민도 많았다. 교사라는 본업이 있는 만큼 예술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면 학생들에게 쏟는 시간이나 애정이 줄어들까 염려했다. 본인 작품에 대한 예술적 가치가 낮다면 굳이 전시회 준비에 몰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검증을 받기 위해 비평가 섭외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안미경 작가가 그림과 사진 작품으로 출간한 책들.
안미경 작가가 그림과 사진 작품으로 출간한 책들.

안 작가는 미술계에서 저명한 평론가 조이한 씨와 인연이 닿아 평론을 부탁했다. 조 씨는 우선 주제의식이 확실해야 하며, 그림 작품을 모두 다 감상한 이후에 비평문을 써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안 작가는 조 씨만을 위한 1인 전시회를 준비했다. 한 마디로 오디션인 셈이다. 결국 안 작가는 합격했고, 조이한 평론가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015년 안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을 펼치며 성공적으로 작가로서 데뷔했다. 더욱 예술적 갈증을 느낀 안 작가는 두 번째 그림과 시를 엮은 그림시집을 준비했다. 그림만으로는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모두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림에 문학적 요소까지 얹으니 몇몇 예술가 관계자들에게 이른바 ‘박쥐’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았죠. 자유롭게 내가 표현하고 싶고, 그저 시각예술이 좋을 뿐이었어요. 유화 작품 제목에 아무리 신경을 써도 내용을 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세상 목소리에 관심...카메라 들고 무작정 뛰어든 청계천

안미경 작가는 청계천에서 생존권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을 담았다.
안미경 작가는 청계천에서 생존권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을 담았다.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는데 집중했던 안 작가는 두 번째 전시를 마친 뒤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사진이었다.

이후 각종 사진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남훈 사진작가 밑에서 1년간 사진을 배웠다. 스승인 성 작가에게 ‘사진이란, 세상사에 뛰어들어 마음을 두드려보고 아픔을 공감하고 그 기록을 시대에 남기는 체험적 인문학이다’라는 정신을 배웠다. 안 작가가 원하는 바였다.

안 작가가 1년간 사진을 배우면서 세상의 모습을 담기 위해 뛰어든 곳은 서울 청계천이었다. 청계천은 각종 공구 상가와 정밀기계 공장들이 오랜 기간 밀집된 곳으로 아직 ‘철기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안 작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공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엔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안 작가는 청계천에서 생존권 투쟁을 하는 비상대책위 사람들을 무작정 만났다. 다행히 사람들은 마음을 열었고, 그때부터 청계천 주변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인 사람들은 절박해 보였다. 특히 안 작가가 막 청계천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을 때는 용산참사 10주년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돈 시기였다.

안 작가는 더욱 청계천 철거민들과 연대했다. 함께 집회에 참여해서 사진을 찍고 천막 농성장에서 시간도 보냈다. 한국산업용재협회의 부탁을 받고 청계천 상공인들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무보수로 거리 전시회를 했다. 또한 천막 농성장 주변에 현수막으로 안 작가가 촬영한 사진작품과 캡션들을 걸기도 했다. 농성장을 빙 둘러싼 현수막 작품들은 한동안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에게 화제가 됐다고 한다.

철거를 앞둔 청계천 상공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안 작가는 사진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지난해 10월 이 작품들로 인사아트센터에서 세 번째 전시회를 열고 사진시집 <청계천 탱크>를 출판했다.

사회역학(사회 구조·제도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학문)에 관심이 많은 안 작가는 <청계천 탱크> 작품들 가운데 ‘녹내장’, ‘몸의 시간’, ‘22%’에 애착이 깊다.

안미경 작가의 사진시 작품  '몸의 시간'
안미경 작가의 사진시 작품  '몸의 시간'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이나 글로 유창하게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그러나 우리 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적 폭력과 상처를 기억합니다. 몸은 뇌보다 정직하죠.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살아온 사회의 시간이 화석처럼 남아요.”

청계천 일부 지역은 이미 철거됐고 생존권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겉으로만 청계천 도시재생을 외치고 있고 삶의 터전을 잃은 청계천 상공인들의 쫓겨난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인천지역 예술인으로서 주변 이야기 다루고파”

안 작가는 이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기록하려고 애쓴다. 추후에는 '철기 문명'을 상징하는 청계천은 물론 '종이책 문명'을 상징하는 인쇄공장 밀집지역 을지로·충무로 일대를 다뤄볼 예정이다. 조선시대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종로 일대는 ‘돈의 문명’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오래 하며 터전을 잡은 만큼 인천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관심을 보였던 것은 부평 미군기지(캠프마켓)였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초임으로 근무할 당시 주한미군 아버지와 주한미군기지촌 여성을 엄마로 둔 1학년 학생을 가슴으로 챙긴 기억이 남았기 때문이다.

“인천으로 발령 나면서 부곡초·산곡남초·부원초·신촌초·미산초 등 모두 조병창과 캠프마켓이 있던 학교에만 배치됐어요. 신기한 인연이죠. 덕분에 아픈 역사가 담긴 캠프마켓에도 애착이 생겼죠. 부평 향토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공부도 많이 했는데, 아쉽지만 캠프마켓에 대한 선행연구는 이미 많더라고요.”

따라서 안 작가가 다룰 첫 인천 이야기는 인천에 많이 분포한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주로 아랍계 이주민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한국이주인권센터 이사를 맡으며 활동하고 있다. 인천의 외국인 주민은 지난해 기준 13만여 명으로 10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중 이주노동자는 2만5209명에 달한다.

“세상은 아직 소수자에게 충분히 정의롭지 않은 것 같아요. 피부색·종교·국적은 더 이상 서로를 가르는 ‘금’이 아니에요. 금을 넘었다고 나가라고 외치는 것은 불공정해요. 물론 저도 소수자에게 다가가기 쉽지는 않겠지만, 우린 다 같은 사람이에요. 마음이 물길처럼 오가면 사진과 사람이 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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