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ㅣ‘요즈음 도시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인사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과는 어그러지는 일이다.’

지금 얘기가 아니다. 1942년에 발행된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실린 사설의 일부다.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해 애국반을 만들고, 상회(常會)를 열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 뒤를 잇는다.

애국반은 1910년대에 만든 반(班)이 변형돼 나타난 조직이다. ‘반’은 조선총독부가 만든 최하층의 행정조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반’을 기초로 주민들을 통제했다.

일본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1년이 지난 1938년에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만든다. 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바뀌는 단체다. 이 단체의 지역 말단 조직이 애국반이다. 10호, 즉 열 가구를 하나의 애국반으로 묶었다. 감시와 사상 통제를 촘촘하게 수행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게 애국반상회를 매달 개최했다.

반상회에서 전달된 내용 중에는 ‘연료를 절약하자’거나 ‘생활을 명랑히 하자’, 혹은 ‘술잔 돌리기를 하지 말라’와 같은 것도 많았다.

지금 얘기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국반상회가 순기능을 했다고 평가하진 않는다. 의도와 목표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반상회는 전시 선전으로 주민들을 교화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소개하며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체제를 홍보해 주민들 스스로 행정에 협력하게 유도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권에 복종하는 것으로 이어지길 원했다. 반복된 선전과 홍보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 거라 생각했다.

광복 후 사라질 것 같던 반상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반을 가동시키면서 부활됐다.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재건반이란 이름으로 유지됐고, 유신 체제에서 매달 25일이 반상회의 날로 지정되며 더욱 강화됐다. 지금도 정례 반상회 날은 25일에 개최하는 게 원칙이다.

며칠 전, 반상회 관련 홍보물이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걸 보고 다소 놀랐다. 사실상 사라진 줄 알았던 반상회가 아직 그 명맥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동네 집들을 옮겨 다니면서 반상회를 열었다. 그게 참 귀찮았다. 우리 집으로 결정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들을 저녁 늦게까지 하다가 돌아가고는 했다. 그러고 보니 ‘반장 아주머니’란 직함을 가진 분을 본 것도 꽤 오래 전 일인 것 같다. 통계를 보면, 반장 자리가 공석으로 있는 곳이 평균 25% 정도 된다고 한다. 그만큼 반(班)의 역할은 축소됐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전래 미풍양속으로 지속 정착되게’ 운영한다는 지침만 제시하고 있다. 반상회 개최 여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여러 가지 순기능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상회 내용은 대부분 행정 홍보다.

인천시 홈페이지에 매달 반상회보가 올라오는데, 정부의 홍보자료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홍보가 목적이라면 굳이 반상회를 통해 할 필요는 없다. 이웃과 정(情)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여론을 모아 창구를 찾아간다.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반상회는 관이 주민을 관리ㆍ감독한다는 종적 관계의 흔적이다. 지금은 주민이 관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대다. 나아가 관과 주민이 협력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불필요한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하는 반상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현실적으로도 유명무실한 모임이다. 100년 가까운 반상회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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