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ㅣ과부, 미망인.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 말들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왠지 모를 불쾌감이 올라왔다. 당시 그 뜻을 잘 몰랐지만 엄마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낮춰 부르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성인이 되고 ‘미망인’의 뜻을 알고서는 뜨악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 남편과 함께 죽어야하는데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라니.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어야한다는 중국 고대 순장제도가 그 배경으로, 남성 중심적 가치관으로 만들어진 언어다. 우리 엄마 이름은 송순복이다. 송순복으로의 삶이 있는 온전한 존재이지 아빠의 부속품은 아니다.

나 역시 무심코 사용했던 이런저런 언어들에 차별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나와 같은 불쾌감이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용해야할 언어에 숨어있는 차별은 권력관계로 이어지고 되풀이되고 있다.

인천여성회는 매해 ‘보라바람’이라는 성평등 실천 활동을 회원들과 함께 펼치고 있다. ‘3ㆍ8세계여성의날 연대 활동’, ‘#미투 위드유(me too with you) 캠페인’, ‘여성 정치세력화’ 등, 성평등 가치를 내 삶의 공간에서 실천하며 우리사회에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언성을 높이자(언어 바꾸기로 성평등 감수성을 높이자)’ 주제로 성차별 언어를 찾아 성평등 언어로 바꾸는 활동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같이 모여 하기는 어려웠지만 화상회의와 채팅 등 온라인을 활용해 의견을 나누고 실천했다. 성차별 언어 수십개를 찾아냈고 그중 열 개를 선정해 성평등 언어로 바꿔 말하기로 했다.

선남선녀→아름다운 청춘, 출가외인→결혼한 딸, 집사람→배우자, 성적 수치심→성적 불쾌감, 맘카페→육아카페, 효자손→등긁이(등긁개), 워킹맘→직장맘, 미망인→사별한 아내, 주부→살림꾼, 내조ㆍ외조→배우자 활동 등이다.

의견을 모으고 선정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다양한 유래와 뜻을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하면서 언어 속에 숨어있는 차별과 권력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안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 내 안에 내면화된 가부장 문화를 확인하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언어도 사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지기에 다양한 방식의 캠페인으로 주변에 알려나가고 있다.

얼마 전 추석명절에 언론에서도 성차별적 언어를 쓰지 말자는 보도를 했다. 명절이 되면 유난히 성차별적 언어 사용이 화두가 된다. 처가와 시가를 오가며 가족관계 안에서 호칭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댁과 처갓집이 아니라 시가와 처가로 쓰기 시작한 사람들도 이제 주변에 생기기 시작했다. 아가씨ㆍ도련님이 아니라 ○○씨로 부르기도 한다.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온 말들이 습관화돼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하나씩 바꿔 쓰다 보면 어느새 성차별적 언어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언어와 사고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말에 담긴 묵직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올바른 말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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