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ㅣ7월 즈음, 친구가 내게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냈다. 최근 입덕한 아이돌이라며 심심할 때 보라는 거다. 마흔 중반에 아이돌을 좋아하다니, 궁금함에 링크를 눌러보았다. 격렬한 안무를 하며 빠른 댄스곡을 부르는데 목소리와 음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숨소리와 마이크 잡음이 들리는 걸 보면 라이브가 분명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이돌이 있었나? 이들은 바로 방탄소년단(방탄). 내친김에 라이브 무대 영상을 몇 개 더 검색해서 봤다. 노래 실력과 멋진 퍼포먼스, 훈훈한 외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날부터다. 유튜브 홈 화면의 추천 영상이 ‘먹방’에서 ‘방탄’으로 바뀌었다.

별 생각 없이 인공지능이 골라주는 영상들을 보는 사이 멤버 이름도 알게 되고 나이와 데뷔한 시기, 성격과 취향 등 깨알 정보들을 섭렵해갔다. 방탄의 팬들이 만들어 올린 영상은 봐도 봐도 끝이 없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 날에는 새벽 다섯 시가 되는 줄도 모르고 유튜브에 빠져 있었다. 어느새 나 역시 방탄의 열렬한 팬이 돼있었다.

유튜브가 취향 저격 영상을 알아서 보여주니 참 기특하고 편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찜찜했다. 내가 어떤 영상을 좋아하고 시청하는지, 유튜브가 내 사생활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느낌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이 사진 속 인물에 이름을 자동으로 태그하는 안면 인식 프로그램을 도입했을 때도 그랬다. 내가 누구인지,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고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페이스북이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왜 이토록 집요하게 내 뒤를 추적하는 건지 궁금했다. 내 정보를 어딘가에 팔아넘기려는 걸까. 핸드폰 번호나 주민등록번호가 알려지는 건 아니니 그래도 큰 문제없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최근 ‘소셜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이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라 부르는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저마다 비밀스러운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열면 사람마다 다른 게시물을 보게 되는데,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이다.

페이스북은 ‘좋아요’나 ‘댓글’ 등으로 소통이 잦은 이들의 게시물, 취향이 비슷한 게시물을 우선 보여준다. 유튜브 역시 최근 본 영상과 비슷한 것을 자동 추천하고, ‘새로 고침’을 하면 이전에 보지 않은 새로운 게시물이 최상단에 뜨게 한다.

‘소셜 딜레마’에 의하면, 이것은 이용자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용자의 SNS 사용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함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광고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 것. SNS 기업들은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해 그들에게 적절한 광고를 띄워 돈을 번다.

SNS를 이용하는 즐거움과 편리함이 있으니 광고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한발 양보한다고 치자. ‘소셜 딜레마’는 아이티(IT) 기업들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의 위험성을 다양하게 밝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람들이 대립하는 두 입장으로 갈라지는 개인적ㆍ정치적 ‘분극화’다.

예를 들어 구글에 ‘지구온난화’를 검색하면 사용자가 사는 지역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지구온난화의 심각성’ 또는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님’ 이렇게 서로 다른 자동 완성 문장이 뜬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계속 보게 되고 결국 그것이 진짜 세계의 모습이라 믿게 된다. 미국에서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는 것도, 허황된 음모론을 철석같이 믿는 것도, 모두 SNS가 보여주는 편향된 세계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중을 거짓으로 뒤흔들 수 있음을 ‘소셜 딜레마’는 경고한다.

정보는 확실히 권력이 된 듯하다. 개인정보를 비롯한 막대한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지, 기업과 정부가 아닌 대중이 관심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여갈 내 정보에 대한 권리를 나는 놓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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