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어디 갔어, 버나뎃(Where’d You Go, Bernadette)

인천투데이│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2020년 개봉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고위급 간부인 남편, 똑똑한 딸과 함께 시애틀의 대저택에 사는 버나뎃(케이트 블란쳇)은 모든 걸 갖춘 겉모습과 달리 행복하지 않다. 일상은 불만 투성이고 신경이 곤두서있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사람들과 섞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그래서인지 집에 생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항공권 예약, 쇼핑까지 인터넷 대행업체를 이용해 이메일로 처리한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버나뎃은 과거에 최연소로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 건축가다. 많은 건축가ㆍ예술가와 교류하며 건축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설계하고 건축했다.

숱한 건축학도의 워너비였으나 엘진(빌리 크루덥)을 만나 결혼하고 수차례 유산 끝에 딸 비(엠마 넬슨)가 태어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남편과 딸에게 헌신하면서 10년이 넘는 건축가로서 이력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겨졌고, 그에게 남은 것은 불면증과 신경쇠약, 사회부적응이다.

마음 나눌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딸 동급생의 엄마인 이웃집 오드리(크리스틴 위그)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랖의 끝판왕인지라 사회성 제로 버나뎃과는 상극이다. 사사건건 부딪힌다. 남편과 딸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생각한다. 버나뎃, 그녀는 돌+아이야.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던 사립학교에 진학하게 된 딸 비는 버나뎃과 엘진에게 남극여행을 제안하고, 낯선 사람과 함께 장시간 이동해야하는 여행이라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지만 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던 버나뎃은 가족의 남극여행을 약속한다. 가뜩이나 폭발 직전인 버나뎃의 신경은 여행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져 ‘툭’ 하고 끊어질 일만 남았다.

여기에 버나뎃이 국제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FBI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급작스러운 스릴러 분위기마저 풍긴다. 급기야, 믿었던 남편 엘진마저 버나뎃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 심리치료사의 처방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이제 버나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어디 갔어, 버나뎃’은 마리아 셈플이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 비포 미드나잇’ 연작과 ‘보이후드’ 등 전작에서 보여준 감독의 장기를 발휘해 솔직하고 담백한 화법으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답게 쉼표 없는 대사 대잔치(비포 시리즈 셀린느의 쉴 새 없는 수다를 떠올려 보라!)가 케이트 블란쳇의 노련한 연기와 만나 팡팡 폭죽을 터뜨린다. 우아해 보이기만 했던 케이트 블란쳇은 능수능란하게 속사포 수다를 소화하며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로 관객들이 괴팍하기 짝이 없는 버나뎃을 개성 있고 매력 넘치는 인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버나뎃을 보며 ‘저거 난데?’ 싶은 관객이 꽤 많을 것이다. 물론 물의를 일으키기는 싫으니 버나뎃처럼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고 불화를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속마음은 딱 버나뎃인 사람. 바로 나다. 엘진이 개발한 속마음을 읽어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만다2가 실제로 나온다면 아마도 인공지능의 입을 빌어 ‘내가 바로 버나뎃’이라 고백할 이가 여럿일 게다.

그러나 괴팍함과 사회부적응, 신경쇠약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봐주는 이는 너무 적다. 영화에서 보듯 사랑하는 남편마저도 아내보다 수사관과 치료사의 말을 더 신뢰한다. 오로지 딸 비만이 엄마의 이면을 본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제멋대로 판단ㆍ진단하고 처방하는 무례한 사회가 만든 풍경이다.

‘어디 갔어, 버나뎃’은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다. 특이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게 병이고 죄인 사회에서 모두가 싫어하는 버나뎃은 괴팍함의 이면에 더 없이 창조적인 에너지가 꿈틀대는 축제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라, 상상도 못할 열정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이해하는 사려 깊은 눈.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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