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1만 5000여명은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외쳤다. 여성도 인간이라고, 여성에게도 빵(경제적 권리)과 장미(정치적 권리)를 달라고.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유럽대륙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폭등하면서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다.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갔다.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했고,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는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04주년을 맞는 세계여성의 날이 다가오면서 과연 여성의 날을 ‘기념’한다는 게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세계 여성들이 저항했던 그날로부터 100여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수많은 여성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여성의 권리는 이전보다 많이 확장되었고 지위도 높아졌다. 한국에서도 식민지 시절 평양고무공장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1970년대 방직공장에서 일어난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등, 빵과 장미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투쟁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엔 성평등 관련법 제·개정이 이뤄지면서 제도적으로 많은 부분 평등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많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양육과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건재하다. 때문에 여성들은 일과 가정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고 산다.

게다가 여성은 ‘반찬값이나 버는’ 부차적인 노동자로 취급되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린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여성 국무총리가 나오고 여성 대법관이 나오는 시대라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여전히 일과 가정 사이에서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그에 대한 온당한 대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었던 여성이 다시 노동시장에 나올 때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온 일자리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극심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남성 상사의 성희롱에 항의했다가 부당해고를 당했다. 여성들이 대다수인 학습지 노동자의 경우는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임시교사와 보조교사가 많아지면서 학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권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역시 대다수가 여성이다. 노동의 가치에 비해 낮은 대가를 받아야 하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부당함에 항의하는 상식적인 행동조차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에서 여성들이 겪어야하는 현실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아직 ‘기념’할 때를 맞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념’과 ‘축하’가 아니라 ‘연대’이다. 남쪽 끄트머리 부산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향해 기나긴 행렬이 이어졌던 ‘희망버스’의 연대를 기억한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사태에 이어진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는 ‘와락’캠프를 기억한다.

꿈쩍도 않는 사측에 맞서 싸우는 장기투쟁 사업장을 뚜벅뚜벅 찾아가 연대의 악수를 나누는 ‘희망뚜벅이’들을 기억한다. 연대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과 장미를 획득하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 인천에서도 늙은 여성노동자가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에스오일인천저유소 조리원이었던 이 여성은 올해 1월 1일자로 12년 동안 일해 온 일터에서 쫓겨났다.

토요일도 없이, 가끔은 일요일마저 반납하고 일하면서도 계약직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그런 일자리여도 계속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용역회사는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보내왔다.

그는, 매일 아침 그를 향해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회사 정문으로 나간다. 홀로 싸우고 있는 이 여성노동자를 향해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에서부터 104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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