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테스와 보낸 여름(My Extraordinary Summer with Tess)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2020년 개봉

인천투데이ㅣ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섬으로 여름휴가 여행을 온 샘(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은 열두 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죽음을 고민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막내인 자신은 가장 늦게까지 살 테니 언젠가 홀로 남겨질 것이다. 결국 샘은 휴양지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외로움 적응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샘은 또래 소녀 테스(조세핀 아렌센)를 만난다. 쾌활하고 밝은 듯 보이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제멋대로인 데다 뭔가 비밀을 안고 있는 것 같은 테스. 자의 반 타의 반 테스와 어울리며 샘의 외로움 적응 훈련 계획엔 차질이 생기지만, 뜻밖의 만남과 깨달음으로 샘은 어느 해보다 특별한 여름을 보낸다.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의 ‘테스와 보낸 여름’은 열두 살 소년 샘과 소녀 테스의 우연한 만남이 만든 마법 같은 시간, 두 소년 소녀의 성장을 아름답게 그린 네덜란드 영화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외로움을 미리 당겨 걱정하고 대비하는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 샘.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가 궁금한 테스. 오래 전 엄마의 여행일기를 보고 아버지의 정체를 추리해낸 테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깜찍한 작전을 수행하고, 샘은 테스의 작전에 동참한다.

테스의 친부 찾기 대작전을 수행하며 샘의 외로움 적응 훈련에는 큰 차질이 생기지만, 대신 큰 깨달음을 얻는다. 홀로 남겨질 미래를 걱정하느라 홀로 남겨졌을 때 살아갈 힘이 되는 현재의 추억 만들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 샘의 가족, 테스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은 적절한 윤활유가 돼 샘의 깨달음을 촉진한다. 샘의 깨달음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진부한 주제다. 사건 전개 역시 너무 동화적이다.

샘과 테스의 가족들은 너무나 반듯하고, 갑자기 나타난 테스의 친부마저 책임감이 넘친다. 심지어 친부의 현재 애인은 애인에게 다 큰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침착하고 쿨하다. 리얼리티는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보통 리얼리티 떨어지는 진부한 주제의 영화는 보고 나서 찝찝함만 남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개운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진부한 주제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샘과 테스를 연기한 어린 배우들의 연기는 보는 내내 웃음을 거둘 수 없게 한다. 외로움 적응 훈련 계획을 세우고 홀로 시간을 견뎌내는 샘의 진지함과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테스의 발랄함이 만나 빚어내는 케미는 마치 아름다운 휴양지의 불꽃놀이 같다. 동화 같은 이야기와 찰떡인 배우들이다.

거기에 샘과 테스의 뒤로 펼쳐진 산호 빛깔 바다와 광활한 들판은 코로나로 꼼짝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흥겨운 라틴음악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다. 샘과 테스가 온 힘을 다해 들판을 뛰어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씽씽 달릴 때, 지체 없이 바다로 뛰어 들어 물장구를 칠 때, 마치 관객인 내가 멋진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온 기분이 든다.

영화는 찰떡 연기를 보여준 배우, 아름다운 풍광, 신나는 라틴음악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져 근사한 여름날의 추억을 만들어줬다.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 시대 추억 쌓기의 기회를 빼앗겨 버린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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