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 청계광장서 농성하는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인태연 공동회장

입춘이 지났건만 동장군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지 최근 냉랭한 야권후보 단일화만큼이나 서울 청계광장에 한파가 매섭다. 12일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농성 6일째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인태연 공동회장은 ‘유통재벌 규제 중소상인생존권 확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한 야권단일화와 정권교체’를 위해 청계광장에서 농성하고 있다.

인천 부평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매일 아침 가게로 출근하는 대신 청계광장으로 출근한다. 청계광장에서 밤 9시까지 농성을 마치면 다시 부평으로 오는 생활이 어느 덧 엿새째 접어들었다. 가게 대신 청계광장으로 출퇴근하는 그의 절박한 호소를 들어봤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인태연 공동회장은 ‘유통재벌 규제 중소상인 생존권 확보, 한미FTA 폐기를 위한 야권단일화와 정권교체’를 위해 청계광장에서 농성하고 있다.
▶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률(이하 상생법)’ 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 후 2년 만에 다시 하는 농성이다. 까닭은?

 

= 2년 전에도 이맘때 쯤 중소상인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 같다. 2006년 무렵부터 카드수수료 인하운동을 시작했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대형마트가 급속도로 확산됨과 동시에 지역 상권은 심각하게 붕괴됐다.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우리 동네 부평종합시장만 보더라도 빈 상가가 즐비하다.

그러면서 상인운동은 자연스럽게 대형마트 규제로 옮아갔다. 당시 17대 국회에서도 유통법 개정안과 특별법 등이 발의됐으나 상임위원회조차 가보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그리고 2008년 18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다시 유통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 적정규모보다 100개 과잉”

그러는 사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꾸준히 증가하고, 중소상인들은 지속적으로 폐업과 실업으로 내몰렸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처음 상인운동 시작할 때 ‘대형마트 입점 시 적정규모가 인구 15만명당 1곳’(삼성경제연구소 발표)이라 했다. 5000만 인구라고 하면 국내 적정규모는 330개 정도다. 그런데 이미 430개를 넘어섰다. 과포화 상태와 과당경쟁에 도달했다. 그 뿐인가? 기업형 슈퍼마켓은 1000개를 넘어선지 오래라 파악조차 안 되고 있고, 사업조정을 피해가기 위한 편법 슈퍼형 편의점까지 포함하면 이루 셀 수가 없다.

그래서였다. 당시 중소기업청중앙회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실 점거도 했는데,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10년이 끝나갈 때쯤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이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지금 그 법안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바로 자유무역협정 때문이다. 어쩌나? 쓰나미가 곧 몰려온다는데 내 가게 문단속만 잘하고 있으면 살아남나? 아니다. 그래서 청계광장으로 나왔다. 가게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가게 밖에서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 시기 상인들의 투쟁이 이를 증명해준다. 정치권이 언제 상인들의 요구를 받아줬나? 그저 선거 때마다 찾아와 악수하고, 사진 찍고 시장 지붕 좀 고쳐주면 되는 거였다. 그러는 사이 상인들은 거덜 났다.

▲ 국내 대형마트 수는 적정 규모인 330개를 넘어 430개를 넘어섰다. 과포화 상태와 과당경쟁에 도달했다. 마포구 합정동에서 홈플러스 입점을 막고 있는 상인들이 농성장을 지지방문 했다.
▶ 자유무역협정과 위배라던 새누리당도 중소상인 보호하겠다고 나섰는데?

= 농성을 시작하던 날 들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를 만든 장본인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해서 그런지, 꼭 이행해주길 바란다. 다만 그들의 진실성을 논하기 전에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 갈게 있다. 새누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한 다음 국내 대책으로 유통법과 상생법 일부를 개정했다.

유통법 개정안은 대형마트 등의 의무휴일제 도입과 영업시간 제한이다. 개정안을 바탕으로 전주시의회가 가장 먼저 관련 조례를 만들었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일선 자치구와 협의해 조례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등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핵심은 그게 아니다. 당장 유통재벌이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벼리고 있질 않냐? 여전히 재벌들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 기회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의무휴일제 도입 전에도 전주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소송이 제기됐다. 현행 입점 제도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이기 때문이다. 등록제 아래에서 지자체가 소송을 당하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입점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는 데 있다.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과 의무휴일제 등도 등록제를 기반으로 해야 제대로 실현된다.

“대기업 지분 90%, 중소기업적합업종 가능하겠냐?”

하나 더, 상생법 개정안도 새누리당과 정부의 꼼수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재벌들이 빵집, 순대, 떡볶이 사업 등에 무분별하게 진출하니 중소기업적합업종을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토록 했다. 부평만 보더라도 150여개에 달하던 동네 빵집이 딱 반 토막 났다. 70여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의 공세 앞에 놓인 촛불신세다. 어디 빵집뿐인가?

자영업자로 일컬어지는 중소상인들은 지역경제의 기반이자 경제생태계의 숲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을 국민경제 상생방안으로 줄기차게 제시했다. 헌데 정부는 이것을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토록 했다. 문제는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이 지분 90%이상을 출자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산하기구라는 점이다. 결국 재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적합업종 지정이 가능하겠나. 그래서 우리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특별법’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청이 독립성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한다. 그게 아니면 꼼수일 뿐이다.

▲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인태연 공동회장은 6일째 부평에서 서울 청계광장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농성 6일째 청계광장 기온은 영하 7도를 기록했다.
▶ 새누리당의 중소상인 보호대책도 자유무역협정과 위배되는 것 아닌가?

= 어렵게 얘기하지 않겠다. 당연히 위배다. 새누리당이 내놓든 민주통합당이 내놓든, 통합진보당이 내놓든 그 어떤 보호대책 법안도 모두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협정 위배다. 일례로 새누리당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지방 중소도시에 진출하는 것을 5년간 금지하는 유통법 개정안을 추진키로 했다는데, 약 50개가 시‧군이 해당한다. 또 지자체가 월 최대 4일까지 강제휴무일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대책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가 이미 밝혔듯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12조 4항 ‘시장 접근’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결국 전국 50개 시와 군에 해당하는 지자체를 ‘투자자 국가소송제’ 구덩이로 몰아넣는 일을 자행하게 된다.

자유무역협정을 날치기할 땐 언제고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니 보호 법안을 추진하겠다? 결국 새누리당은 자기모순에 빠진 셈이다. 그래서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가 이번 총선에서 제시한 3대 분야 12개 정책과제 중 1순위는 단연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다. 이게 발효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나들가게’와 물류센터 건립 사업, 유통법에 따른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상생법에 따른 사업조정제도, 중소상인 적합업종 법제화 등이 모두 상충한다. ‘투자자 국가소송제’에 걸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다.

“자유무역협정 날치기하고 보호법안 만든다며 김종훈 공천?”

새누리당의 모순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바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전략공천설이다. 그는 자유무역협정 추진의 공신1호다. 아니 보호법안 마련하자면서 그를 전략공천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2010년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부터 지난해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A날치기 전에 열린 끝장토론까지 김종훈 본부장은 철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국내 보호법안이 협정 위배라며 재협상 여론이 들끓었을 때도 점하나 고칠 수 없다고 한 검투사다. 그런 그를 영입한 새누리당의 진정성을 과연 어디서 믿어야하나?

익히 알려진 것처럼 2010년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 국면 당시 국회 입법조사처와 지식경제위원회 전문위원실 등에서조차 두 법안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배가 아니라는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 김종훈은 줄기차게 이 법안들을 폐기 직전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나중에는 ‘한-EU 자유무역협정 위반’을 이유로 중소상인과 국회의원들을 겁박했다. 심지어는 영국 대형유통업체인 삼성테스코의 이익을 가장 앞장서서 옹호했던 이가 바로 김종훈이다.

물론 민주통합당에도 이른바 엑스 맨(X man)들이 있다. 민주통합당 내 엑스맨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이번 총선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같이 발표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통합당도 진정성을 얻으려면 자유무역협정 폐기 또는 재협상을 당론으로 제시해야한다. 그래야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
▲ 인태연 공동회장은 한미FTA를 폐기하든 재재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필요조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야권단일화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야권단일화와 정권교체, 자유무역협정이 한 몸이라고 하는 이유는?

= 새누리당은 자유무역협정 폐기 또는 재재협상을 당론으로 절대 채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채택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나아가서는 총선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로 ‘한나라당’으로 돌아갈 것이 눈에 보이기에 그렇다. 만일 새누리당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개벽이다. 말 그대로 새 누리(=세상)가 열리는 것이다.

그러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귀결되고 우리는 새 누리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지난날 역사와 오늘날 모습을 통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서다.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거나 재재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야권단일화는 정권교체로 가는 기초다. 민주통합당만의 힘으로 안 된다. 2004년 탄핵역풍에서도 살아남은 새누리당이다. 오죽하면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면서 ‘여론지지율 1위에 고무돼 자만에 빠졌다’고 비판했겠나? 이번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는 정권교체로 가는 마중물이다. 소탐대실 할게 아니라, 살을 주고 뼈를 쳐야한다. 그럴 때 정권교체는 가능하다.

“야권단일화는 정권교체로 가는 마중물, 살을 주고 뼈를 쳐야”

농성장에 있으면 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간다. ‘인증샷’ 많이 찍었다.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다녀갔고 심상정 공동대표도 방문한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천정배 전 최고위원과 조경태 의원이 다녀갔다. 정동영 전 최고위원과 임종석 사무총장도 방문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많은 야당 인사들이 다녀갔고 또 올 예정이다.

나는 여기 방문한 분들의 진정성을 믿는다. 유시민 대표와 한명숙 대표, 정동영 의원이 자유무역협정 폐기와 재재협상과 관련해 지난날의 행적 때문에 일각에서 공격을 받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유시민 대표가 참여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안고 가겠다고 한 것도 진심이고, 정동영 의원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지키고 지유무역협정 반대에 가장 앞장서 활동한 것 또한 진정이다. 국민 앞에 진정성을 가지고 사죄한 뒤 지금이라도 99%와 함께 같은 길을 간다면 국민들은 믿을 것이다. 모두가 그 진정성을 가지고 야권단일화에 나서줬으면 한다.

한명숙 대표가 취임 한 달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야권단일화에 대해 역설했지만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항간의 말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가슴 절절히 호소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이뤄 달라. 그리고 그 동력을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이뤄야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든 재재협상을 할 수 있다. 제발 우리 600만 자영업자들의 마지막 희망을 외면하지 말고 가슴에 품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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