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가을호, 코로나19가 보여주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인천투데이=이보렴 기자│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최근 발행한 <황해문화> 2020년 가을호(통권 108호)는 코로나19의 확산과 그가 보여주는 세상의 민낯을 고찰한다.

새얼문화재단은 “코로나19의 위력 앞에서 편집진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했다”며 “관련 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드러낸 세계의 민낯을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고 기획의 취지를 전했다.

지난해 연말 중국 우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폐렴이 유행한다는 소식 이후, 코로나19는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국내에서는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대구·경북이 감염의 온상으로 떠오르자 많은 국민이 경악하면서 신천지와 대구시를 혐오함과 동시에 불안과 공포를 견뎠다.

이 밖에도 소위 ‘선진국’이라고 여겨졌던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들도 일순간에 코로나19 감염이 퍼졌다. 미국은 넘쳐나는 환자들로 병상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망자의 시체를 처치하지 못해 냉동 탑차에 임시로 시체를 안치했다. 또 코로나19 희생자들을 하얀 천으로 덮어 집단 가매장하는 모습 등 치부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코로나19가 앞으로 계속될 것인가, 종식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19 사태는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19가 드러낸 세상의 민낯도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보여주는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조문영 문화인류학자는 ‘한국사회 코로나 불평등의 위계’라는 글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재난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날 뿐 아니라 불평등한 위계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선생은 코로나19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교육·문화자본을 갖춘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 홈리스와 쪽방 주민들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문제는 이들 중에서도 불평등한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청년세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불안감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젠더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에서 위태롭게 발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를 당하고 있으며 홈리스, 쪽방주민, 기초생활수급자 등 도시빈민들은 국가로부터 재난지원금을 받지도 못한 채 ‘감염원’이라는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조 선생은 이 모든 게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독일의 코로나19, 단적인 ‘황색 혐오’의 사례

독일 베를린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은정 선생은 ‘코로나와 아시아의 타자화’라는 글을 통해 독일인들이 바라보는 코로나19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선생은 독일 언론은 각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보도하면서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방역 국가라는 자국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코로나19는 비문명적인 중국에서 발생했고 중국의 실책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한국의 방역성공 사례조차 권위주의 감세체계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언론이 아직까지도 ‘황색혐오’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독일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여전히 동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선생은 “이것이 코로나19가 새삼 드러낸 서구사회의 민낯”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책임론, 그러나 바뀌지 않을 미·중 관계

박홍서 선생은 ‘코로나 사태는 미중관계의 변곡점이 될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결국 미·중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이 ‘코로나19 책임론’을 통해 중국을 연일 비판하고 있지만 이는 트럼프 정권의 레토릭이라는 것이다. 박 선생은 그 이유로 미국이 구축한 현 자본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은 개혁개방 40년 동안 현 자본주의 국제질서의 최대 수혜자라고 규정한다. 아울러 중국은 이제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처지에서 벗어나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부르주아로 거듭나 중국공산당의 통치정당성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 선생은 전후 자본주의 질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행위 요인에 불과하다고 전망한다.

코로나19, 의료체계·생명과학으로 극복가능한가

김병수 선생은 ‘코로나 위기, 기술적 해결책의 한계’라는 글을 통해 K-방역의 실체와 치료제·백신 개발경쟁의 실상을 말한다.

한국의 K-방역은 광범위한 진단검사와 확진자에 대한 치밀한 감시체계, 그리고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국민들 덕에 가능했다. 그러나 박 선생은 QR코드를 활용한 전자출입부의 전면적인 도입 등 K-방역이 향후 한국 사회가 디지털 감시사회로 전환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제약회사와 국가 간 경쟁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다. 감시와 백신, 치료제, 비대면 장치의 보급과 같은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앞으로 반복될 전염병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19를 낳은 자본주의 실체를 직시해야

김용규 선생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통해 코로나19를 낳은 자본주의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선생은 코로나19는 단순한 병원체가 아니라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낳은 이 ‘비정상적 사태’를 정상으로 고착화해 이용하려고 한다고 진단한다.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언택트’ 자본주의를 단적인 예시로 제시한다.

코로나19를 낳은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를 직시하기보다는 그 실체를 ‘인간’없는 자본주의라는 현실로 덮어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박 선생은 “반생태적이고 반민주적인 언택트 사회로의 가능성과 민주적이고 상호의존적 사회의 가능성, 우리는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두 가지 가능성 앞에 서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가 휩쓴 영화산업의 현실, 젠더분야 비평도 추가

이번 특집에는 15년 동안 지구적 환경문제를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해 온 강제욱 작가의 포토에세이가 실렸다. 재난 환경을 생생히 보여주면서 재난은 그저 악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을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한 과정이라는 작가의 깨달음을 보여준다.

문화비평란은 코로나19가 휩쓴 영화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극장을 대신해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플랫폼에서 새로운 영화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송경원 선생은 한국영화산업과 극장의 변화상을, 김지미 선생은 극장에서 함께 보는 영화의 감동을 지켜야 함을, 박경신 선생은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번 호부터는 문화비평란에 젠더 분야가 추가된다. 젠더 문제가 우리사회의 핵심적 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호 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선명하게 알려준다.

이번 호에는 비평 세 편이 실렸다. 진태원 선생의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한국에서 알튀세르 효과’는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데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김내훈 선생은 ‘주목경제 시대의 프로보커추어’라는 글을 통해 가로세로연구소 등 우익논객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부상하는 현상의 폐해를 지적한다. 박혜영 선생은 ‘우정의 세계 안에서 사는 삶’으로 6월 25일 세상을 떠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을 추모한다.

이 밖에 문예공모에 많은 작가가 참여했다. 소설 작품으로 수록된 강석희 작가의 단편 ‘다운타운 베이비’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아파트 문제를 다룬다. ‘영끌’(영혼을 끌어모으다) 해서라도 갭투자를 서슴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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