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고려 삼별초의 여정과 동아시아 문명 교류 5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고려 기와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
고려와 류큐왕국 관계 주목…삼별초 연결고리 중 하나?

인천투데이=이보렴 기자│삼별초는 제주도에서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삼별초가 고려와 류큐(琉球)의 관계를 설명하는 주제로 등장했다.

제주도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의 내성 석축 흔적. 항파두성 전투에서 삼별초가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의 내성 석축 흔적. 항파두성 전투에서 삼별초가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의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麗匠人瓦匠造)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전멸한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졌다. 1273년 여몽연합군이 제주도를 침략해 항파두성을 함락했고 이 때 삼별초들이 모두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갓을 보여주는 발견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이뤄졌다.

2007년 여름, 국립제주박물관은 ‘탐라와 유구왕국’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했다. 당시 제주박물관은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癸酉年高麗匠人瓦匠造)라는 이름의 기와는 유구왕국 성립 직전에 고려인이 건너가 제작한 것으로, 이 시기 고려와 유구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소개했다.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란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기와는 오키나와 우라소에성(浦添城)과 슈리성(首里城) 등지에서 다수 출토됐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남쪽 끝에 위치한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보다 조금 작다. 오키나와에는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450여 년간 류큐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1429년에 어떤 조짐도 없이 갑작스럽게 통치체제를 갖춘 국가로 출현하는 바람에 많은 역사학자가 그 출현 배경에 관심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의 유물이 나왔다는 점은 류큐국과 고려의 관계에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제주 항파두리 삼별초 항쟁의 역사 PPT 자료 일부.(자료제공ㆍ세계자연유산 항몽유적지)
제주 항파두리 삼별초 항쟁의 역사 PPT 자료 일부.(자료제공ㆍ세계자연유산 항몽유적지)

고려 기와의 계유년(癸酉年)은 언제?

‘계유년고려장인와장조’의 계유년은 구체적 연도를 추측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이다. 학자들은 이 계유년을 고려 역사 500년 중 계유년이었던 1273년, 1333년, 1393년 가운데 하나로 추측하고 있다.

먼저 1273년은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패망한 해이다. 당시 삼별초에게는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거나 여몽연합군에 잡히거나. 그러나 한 가지 가능성이 더 있었다. 제주도를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했을 가능성이다.

개경에서 보낸 군대는 1271년 5월 진도를 함락하고 남녀 1만여 명을 붙잡아 포로로 이송했다. 그런데 1273년 제주도가 함락될 때 포로로 잡혀 개경으로 이송된 삼별초군은 13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제주도 삼별초군 일부가 오키나와로 망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오키나와는 어떤 곳인가?

오키나와는 일본 류큐제도 남부에 있으며, 오키나와 현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섬이다. 길이 108km, 너비 3~26km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화산섬이다. 북부는 산과 밀림으로 이뤄져있고, 남부는 구릉 지대로 바위가 많다. 주민들은 대부분 남부에 거주한다. 남서부에는 현청 소재지인 나하가 있다.

오카나와의 옛 이름은 류큐다. 류큐 왕국은 1879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오키나와 현으로 병합됐다.

오키나와는 조선인 표류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1802년 1월 18일 흑산도 해역에서 조난한 문순득이 10여 일 만인 29일 오키나와에 표착해 목숨을 건졌다’는 기록이 있다. ‘1770년 12월 제주 해역에서 조난한 장한철이 3일 만인 28일에 오키나와 열도 외곽의 섬에 표착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에서 해류만 타고 이동해도 며칠이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섬이다.

용장성 수막새와 오키나와 기와의 유사성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고려 기와의 계유년이 1393년일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기록을 중시한다. 기록에 고려 창왕 원년인 1389년에 고려와 류큐왕국의 교섭이 처음 등장한다. 이때 류큐왕국의 중산왕(中山王)이 사신을 파견해 통교를 희망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나중에 류큐왕국과 조선의 교류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 기록보다 더 주목할 점은 오키나와 우라소에성에서 계유년 고려 기와와 함께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다. 연꽃잎 아홉 개가 중심 문양으로 나타나고 중앙에는 뭉툭한 자방이 있다. 자방과 꽃잎 사이에는 선으로 테두리를 둘렀다. 연꽃잎 외곽으로는 선 두 개를 을 두르고 그 사이에 구슬 문양 30여 개를 장식한 형태다.

이 와당이 진도 용장성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매우 흡사하다. 용장성 기와 꽃잎이 여덟 개인 점 등, 차이점은 있지만 전체적인 문양 형태는 대부분 동일하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삼별초의 1273년 멸망과 관련해 고려의 기와 제조 기술이 오키나와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1333년 설, 1393년 설 등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고려와 류큐왕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임은 분명하다.

강화도 외포항 인근에 설치된 진돗개 상. 강화도, 진도, 제주도 지역 교류의 상징이다.
강화도 외포항 인근에 설치된 진돗개 상. 강화도, 진도, 제주도 지역 교류의 상징이다.

강화도ㆍ진도ㆍ제주도ㆍ오키나와 문화교류 활성화해야

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는 2018년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계기로 삼별초를 활용한 역사기행을 시범 사업으로 기획했다. 삼별초 항쟁의 여정을 따라 강화도에서 진도, 제주도를 탐방하는 3박4일 동안 코스였다. 오키나와는 2019년 이후부터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남문화관광재단 문화재연구소,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유산사업단, 오키나와 현 문화진흥회 문화예술추진과 등과 협력망을 구축하는 것도 목표였다.

이 역사기행 참여 대상은 인천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중ㆍ고생과 학부모 30명이었다. 이 역사기행에 참가한 이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고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사업비에 비해 기대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돼 일회성 사업으로 마무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강화도와 진도, 제주도는 각각 서로 자매도시로 연결돼있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한국과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관심 대상에서 멀어져있다.

지난해 11월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가 주최한 제70회 인천마당에서 ‘두 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를 주제로 강연한 이명원(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문학평론가는 “한국과 오키나와의 관계를 검토해야한다”며 “관련 자료가 상업성이 없어 번역 작업이 쉽지 않은 만큼, 공공기관이 나서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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