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 | 한 달째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던 날, 친구를 만났다. 작고 예쁜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관교동 주택가를 걸을 때였다. 친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저게 뭐지?” 나무 아래 축축한 땅에 붉은색 게다리 같은 것 서너 개가 쑥 올라와 있었다. “오, 독버섯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세발버섯’과 가장 닮았다. 추측과 달리 독버섯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저녁부터 다시 비가 내렸다. 화장실 벽타일의 검은 곰팡이가 눈에 띄었다. 화장실만큼은 늘 깨끗하길 원하는 터라 수시로 비눗물로 청소하며 관리해왔다. 하지만 역대급 장마에 방어벽이 무너진 듯했다. 낮에 본 버섯이 생각났다.

버섯과 곰팡이는 모두 ‘균계’ 생물들. 동물도 식물도 아닌 이 균계 생물들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낼 수 없어 다른 생물체(숙주)나 영양 성분이 있는 유기물에 붙어서 산다. 습도가 높고 서늘한 여름 장마철이 이들에겐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부분의 곰팡이는 독성을 가지고 있어 동식물에 두루 해롭다. 식물에 들러붙어 종자와 뿌리를 썩게 만들고 곡식에 독소를 퍼트린다. 붉은 곰팡이병은 전 세계 밀 공급량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다. 피부 보호막이 약한 개구리와 도롱뇽은 곰팡이 때문에 멸종에 이를 수도 있다.

앞으로 많은 생물이 곰팡이 때문에 긴장된 삶을 살아야할지 모른다.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아 지구 전체의 기온과 습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가정 내에서 서식하는 곰팡이는 알레르기 발병 위험을 45배나 높인다고 한다. 건물의 외벽을 통해 습기가 스며들어 내벽까지 축축하게 만든다. 실내 습도가 올라가면 곰팡이, 박테리아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건물 자체의 부식도 빨라질 수 있다.

곰팡이는 대체로 사람과 같은 포유류의 체온보다 낮은 환경에서 증식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간의 신체는 곰팡이의 서식처론 적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기후 온난화에 적응한 곰팡이종들이 인간과 포유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인간의 혈관이나 장기에 침투해 당뇨나 패혈증, 폐렴 등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키는 효모 곰팡이가 세계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에 따르면 치사율이 높아 감염자 세 명당 한두 명꼴로 사망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면역력이 약한 입원 환자에게 발병률이 특별히 높고 아직 효과적 항진균제도 없어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니, 코로나19로 고군분투 중인 우리에겐 정말 산 넘어 산이다.

식량도, 인간의 신체도, 곰팡이의 위협에서 더는 자유롭지 않다. 락스를 묻혀 솔질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곰팡이 균사는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가니까. 지구온난화에 곰팡이가 어떻게 진화해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흙탕물이 거리를 휩쓸고 소가 지붕으로 올라가는 이 물난리는 글자로만 접했던 기후위기의 실현이며, 기후위기는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물난리보다 더한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비닐장갑 사용 안 하기,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고기 안 먹기, 플라스틱 빨대 사용 안 하기…. 내가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더라. 운전면허가 없어 자가용 운전을 못하는 건 이럴 땐 장점인가? 하루하루 마음만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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