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의 한 대형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ㆍ경상을 입었다.

이천의 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도 안 돼 또 다시 벌어진 중대재해다. 지난 4월 이천 물류센터 참사가 발생했을 때, 12년 전 같은 사고로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참사가 소환됐다.

“우리는 왜 죽은 자리에서 거듭 죽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소설가 김훈의 말은 국민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번에 용인 물류센터에서 참사가 벌어진 날 밤, 인천 서구의 한 화학공장에서 탱크로리가 폭발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또 발생했다.

2012년 8월 경서동 페인트원료 보관창고 화재사고, 2018년 4월 가좌동 이레화학 화재사고와 6월 화학폐기물공장 폐염산 유출사고 등, 서구의 화학공장 중대재해는 끊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와 인천시는 화학공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대책을 발표했지만, 그건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줄 뿐이다.

산재를 다루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범률은 97%에 달한다. 대검찰청의 범죄 통계 분석(2007~2017년)을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과 1범이 471명, 전과 2범이 300명이다. 전과 9범도 105명이나 된다. 같은 범죄자가 같은 범죄를 계속 저지른다는 뜻이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2020명(사고 855명, 직업병 1165명)이나 됐다. 산재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이다.

법에 뭔가 문제가 있다. 산재를 일으키는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 2006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2018년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기업의 책임이 강화됐다. 그러나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경영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현장관리자 등 개인을 처벌하되, 그 개인을 관리ㆍ감독해야 할 의무를 기업이 소홀히 했다고 책임을 묻는 양벌규정을 뒀을 뿐이다. 기업이 처벌받는 이유는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관리ㆍ감독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이 죄를 짓지 않게 해야 하는데 잘못 가르쳤다는 것과 같다.

소설가 김훈은 최근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1년에 재난 노동현장에서 450명이 죽고, 고층에서 추락해죽는 노동자가 250명이다. 이것이 일상화되고 만성화되니까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마비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온 책임은, 산업안전을 강조하면 비용 상승으로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엄살을 피우는 기업주들에게 있다. 중대재해의 책임이 기업과 최고경영자에게 있음을 확실히 하고 법으로 처벌해야 ‘일하다 죽는 대한민국’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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