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며칠 전 새벽이의 돌잔치를 인터넷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날, 커다란 축하케이크를 만든다기에 미리 돈을 조금 보냈다. 새벽이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싶어서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 5시가 되길 기다렸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화면에 나온 건 100kg이 넘는 돼지 한 마리. 이 녀석이 바로 돌잔치의 주인공 새벽이다. 농장에서 생활하는 새벽이의 하루는 날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영상으로 올라온다.

새벽이.
새벽이.

새벽이가 농장을 산책하고 풀을 뜯고 진흙탕에 몸을 담근 채 쉬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사과와 오이를 땅콩 먹듯 씹어 삼키고 수박 반통에 코를 박고 쭉쭉 빨아 먹을 땐 내 입안에도 침이 고인다.

언젠가 골치 아픈 일로 몹시 지쳐있었다. 그날 인스타그램에는 노을빛을 받으며 흙바닥에 앉아 있는 새벽이 사진이 올라왔다. 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새벽이의 옆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새벽이는 그저 그 순간에 머물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싶은 내 투사인지는 몰라도, 그저 귀여운 돼지였던 새벽이가 자기만의 욕구와 감각이 있는 오롯한 존재, 느끼는 존재로 새롭게 다가왔다.

새벽이의 평화로움이 마냥 부럽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새벽이는 여섯 달 전에 죽을 운명이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화성의 한 양돈농장에서 태어났다.

동물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 농장에 들어가 생후 2주차인 새벽이를 데리고 나왔다. 새벽이는 두 달간 한 활동가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몸집이 커진 뒤 유기견보호소로 옮겨져 보살핌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5월, 경기도 남양주 한 농장에 정착했다. 이곳에는 새벽이의 집과 그늘 막, 진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웅덩이가 있다. 근처에 새벽이의 먹거리가 자라는 채소밭도 있다.

새벽이는 ‘동물 구조 활동’으로 살아 남았다. 이 구조 활동은 구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돼지나 닭, 소를 무감각한 고기로만 대하는 사회에, 이들에게도 제 본성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새벽이는 단순히 구조된 한 마리 돼지가 아닌, 동물을 대표하는 존재다. 출생 후 6개월 만에 도축되는 여느 돼지들과 달리, 새벽이는 1년을 살아남았다. 앞으로 또 다른 농장에서 구조된 다른 종의 동물들과 어울려 살게 될 거다.

도대체 돼지를 데려다가 무슨 호사스러운 짓을 하는 것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런 이에게 새벽이는 묻는다. 자신은 왜 그렇게 살면 안 되는지. 동물권 활동가들은 인간을 ‘인간동물’로, 동물을 ‘비인간동물’로 부른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모든 동물에게는 자기 본성을 따르며 살고 싶은 욕구와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 안전한 사람에게만 친근함을 표시하고, 코로 흙을 파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식성이 분명하고 진흙 목욕을 즐기는 새벽이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새벽이를 안 뒤부터 마트 정육 코너의 붉은 덩어리들을 보기가 민망해 빙 돌아간다. 그러나 아직은 의식적 행동일 뿐, 무심코 고기가 든 해장국을 시켜놓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숟가락을 든 건 또 몇 번이던가. 찜찜하고 미안하면서도 국물은 왜 이리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는가. ‘비건 지향’이 아닌 비건으로 나는 살 수 있을까. 고민은 깊고 습관은 질기고 실천은 더디다.

기다렸던 생일케이크를 공개하는 시간. 사과와 오이 등 채소와 과일이 넓적한 그릇에 수북하다. 맨 위엔 하얀색 크림도 올라가 있다. 크림의 정체는 수제두부. 새벽이는 두부를 무척 좋아한다. 케이크가 맘에 드는지 순식간에 그릇을 싹 비웠다. 이 맛있는 케이크를 앞으로 열 번에서 열다섯 번은 더 먹을 수 있을거다. 그게 돼지의 원래 수명이니까.

새벽이의 형제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의 행방을 모를 리 없다. ‘고기’와 ‘새벽이’ 사이에서 아직 헤매는 나에게 묻는다. 돼지는 정말, 고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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