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욕창(A Bedsore)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심혜정 감독│2020년 개봉

[2020년 7월 2일 미림극장] 퇴직공무원 창식(김종구)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전국향)과 단 둘이 산다. 아니, 길순을 돌보는 중국 동포 요양보호사 수옥(강애심)이 아예 창식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으니, 셋이 산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수옥은 길순의 간병뿐 아니라 밥ㆍ빨래ㆍ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아하지만, 불안한 신분 때문에 월 200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저임금 노동을 감내한다. 수옥은 몸져누운 길순과 창식의 집안 살림을 정성껏 돌보지만, 길순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결국 욕창이 생기고 만다.

창식은 결혼한 막내딸 지수(김도영)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리고, 지수는 바로 달려온다. 지수에게 오빠가 둘이나 있지만, 창식은 아들들에게는 연락할 생각조차 않는다. 어머니 길순과 창식의 집안 살림을 챙기는 자식은 삼남매 중 막내딸 지수뿐이다.

다양한 형식의 다큐멘터리ㆍ극영화ㆍ실험영화를 만들어온 심혜정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욕창’은 퇴직공무원 창식의 집을 중심으로 노년과 돌봄의 세밀한 관계도를 그려낸다.

창식은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노후를 보내는 꽤 안정적인 퇴직공무원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루 천 걸음 걷기를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한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외국에 나가 사는 큰아들과 작지만 자기 가게를 아내와 운영하는 둘째 아들, 중산층 가정을 꾸리며 사는 막내딸까지, 꽤 성공한 노년 남성이라 할 수 있다. 겉보기에 창식의 가족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길순에게 생긴 욕창은 창식과 길순, 그의 자식들, 그리고 수옥을 둘러싼 상처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기 건강만 챙기면 되는 창식의 여유로운 노년은, 간병은 물론이고 짠돌이 고용인 창식의 일상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수옥의 노동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창식은 병든 아내에게서 얻지 못하는 정서적 위안까지 수옥에게 바란다.

여기에 수옥이 엄마를 어떻게 돌보는지 집안일은 어떻게 하는지 챙기는 이는, 창식이 아니라 결혼해 독립한 지 오래인 막내딸 지수다. 첫째 아들은 외국에 나가 산다는 이유로 아예 등장하지도 않고, 근처에 사는 둘째 아들은 장남만 편애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돌봄 거부로 시위하는 중이다. 그나마 창식과 길순의 안부를 걱정이라도 하는 이는 며느리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평범한 창식의 집안에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 집 안을 쓸고 닦고 삼시세끼를 챙기는 일은 신분이 어찌됐든 관계가 어찌됐든 같이 살든 따로 살든 왜 죄다 여자인 걸까. 심지어 막내딸 지수는 제 집에 돌아가도 사춘기 딸과 냉랭하기 짝이 없는 남편을 돌봐야한다. 미뤄 짐작컨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창식과 그 집안을 돌본 이는 길순이었을 게다.

이 모든 모순이 드러난 계기는 길순의 욕창이다. 욕창 때문에 방문한 간호사(강말금)는 말한다.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더 깊으냐가 문제거든요.”

창식의 집안이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듯, 우리가 느끼는 평화로운 일상은 특정 성(性), 특정 신분의 뼈를 가는 돌봄노동 위에 만들어진 허상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돌봄노동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수옥이 허물어지면서 창식의 평화롭던 일상은 불안한 연기로 가득 찬다.

겉으로는 별거 아녀 보이지만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는 욕창처럼, 기이한 돌봄노동의 편중과 폄훼는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한 모래성 위에서 위태로운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제16회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심혜정 감독의 ‘욕창’이 상영됩니다. 2020.7.10. 오후 3:30 CGV인천 5관 무료상영]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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