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섭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정민섭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연구원

[인천투데이] 최근 인천에서 지속적으로 근대건축유산의 멸실(滅失)이 이슈가 됐다. 개항도시이자 수도의 관문이었던 인천은 근대문물의 저수지였다.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고 뒤이어 주택과 상점, 은행 등이 들어서면서 근대도시 인천이 형성됐다. 근대건축물을 배경으로 숱한 이야기가 생겨났고 이는 다시 역사가 됐다.

그러나 지금 근대건축유산은 애물단지 신세다. 인천은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확장해갔고, 개발의 각축장이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근대건축유산은 이제 개발의 대상이 돼버렸다. 낡은 것, 쓸모없는 것, 허물어져가는 것,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2018년, 중구는 인천 산업사의 대표적 유산인 애경사 건물을 안전진단 등급이 낮고 관리되지 않는다며 기습적으로 철거해버렸다. 같은 이유로 동구도 인천 조선사(造船史)를 증명하던 신일철공소를 철거했다. 올해도 신흥동 관사마을 일부와 오쿠다 정미소가 개발에 밀려 철거됐으며, 부평의 미쓰비시 연립사택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는 근대건축유산 조사를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아직까지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근대건축유산의 현황을 파악하고 문화재로서 가치를 조사한단다.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사라져가는 근대건축유산을 조사해 향후 보존과 관리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 조사가 상투적이고 수박 겉핥기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야할 사항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근대건축유산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조사가 이뤄져야한다. 단지 근대에 지은 것,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해당 건축유산이 위치한 공간의 역사성을 제대로 반영해야한다.

얼마 전 철거된 오쿠다 정미소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자 여성 선미(選米) 노동자들의 눈물이 서린 곳이었다. 그러나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이 유산은 개발 논리에 밀려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근대건축유산 조사에서 핵심인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 의미 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아 재개발 심의나 문화재 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근대건축유산 조사는 해당 건축유산이 갖는 정체성이 무엇이고, 인천 역사(歷史)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밝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한다.

두 번째, 근대건축유산의 꼼꼼한 기록이 필요하다. 현황과 더불어 역사성만 파악한다고 해서 근대건축유산을 효과적으로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의 구조와 특징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훼손ㆍ망실에 대비할 수 있다.

또한 기록화는 단순히 건축유산의 사진을 남기거나 평면도를 작성하는 수준이 아니라 3D 스캔과 도면 제작,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 건축물에 발생하는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프로그램) 제작 등을 통해 복원이 가능하게 해당 건축물의 위치와 공간 정보를 모두 기록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근대건축유산의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 제작이 함께 이뤄져야한다. 앞서 언급한 3D 스캔, BIM 제작 등의 조사 결과물은 도면 등의 기록자료 외에도 3차원 동영상, 3차원 근대건축유산 재현ㆍ체험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아울러 근대건축유산을 가상현실(VR)ㆍ증강현실(AR)로 체험할 수 있게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한다면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시민이 늘어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다. 또 다시 같은 우를 범하고 만시지탄(晩時之歎)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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