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인천투데이 이권우 도서평론가]

안나 카레니나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거리두기가 오래 되면서 다들 지쳐가는 모양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바람대로 약해지기는커녕 더 강해지는 추세다. 전문가 말대로 백신이 나오기까지 이 사태는 진정되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서 더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주변에서 이런 때 무슨 책 읽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다. 책만큼 우울의 늪에서 끌어내주는 것이 뭐에 있겠는가. 처음에는 가벼운 책을 귀띔해주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 즐겁고 재밌는 것보다는 꼭 읽어야하는데 여러 이유로 미뤄두었던 책을 권했다.

가끔 되돌아보면, 책 별로 읽지 않는 사람은 대하소설 류를 읽었는데, 책 열심히 읽는 사람 가운데 그런 책은 못 읽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주변에서 10권짜리 소설 읽는 사람은 일 년에 딱 그것만 읽은 사람일 공산이 크다는 농담이 오가는 이유다.

그러니,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재택근무하거나 주말에 나돌아 다니기 어려워 집에 콕 처박혀 있을 적에 긴 시간 들여 읽어야 할 책을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싶었다. 나도 그랬다. 평소 읽다가 말았거나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한 책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삼국지’와 ‘안나 카레니나’였다. 여러 판본으로 도전해 보았지만, 어투나 내용에서 나는 ‘삼국지’를 완독하기 어려웠다. 고우영의 만화로 대신했을 뿐이다. 이번에 읽은 것은 황석영의 것이었는데, 읽기에는 무난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삼국지’를 떠받치는 가치관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아리송했다. 영화로 본 적이 있어 책으로 읽었으리라 여긴듯하다. 하지만 책을 찾아 들춰보니 읽지 않은 게 확실했다. 그래서 읽어나갔다. 이런 소설도 안 읽고 책벌레라하고 다녔구나, 하고 자책하면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퍼뜩 든 생각이 있다. 처음부터 내가 이 작품을 영화로 찍겠다고 마음먹고 읽어보라는 것이다.

당연히 안나 카레니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귀족계층의 삶을 복원하고 정열적인 애정극과 그 파탄을 그려내리라 생각할 테다. 하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작품을 내가 다시 영화로 찍어야할 이유를 알아내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은 실제로 두 명이다. 그 한 명은 당연히 안나 카레니나이고, 다른 하나는 키티를 사모하고 마침내 그녀와 결혼하는 레빈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레빈이라는 음각화가 있기에 비로소 양각화가 완성되는 구조다. 두 사람의 삶이 교차로 나오며 비교된다.

그런데 독자는 매력 넘치는, 그러나 비극에 이르는 연애행각을 펼치는 안나 카레니나만 주목하기 마련이다. 읽는 사람 탓이 아니다. 두 등장인물은 단 한 차례 만나는데, 그때 레빈도 안나 카레니나에게 매혹 당한다. 톨스토이가 매우 잘 써서 그런 일이니까.

하지만 정작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그래서 읽는 사람이 자신을 성찰하고 본뜨게 하고 싶었던 삶은 바로 레빈이었다. 톨스토이 작품을 읽어온 사람은 설교조 이야기가 레빈에게서 나오겠구나 하고 눈치 챌테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부활의 마지막 장면처럼 노골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자, 당신이 만약 레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어떻게 영화를 찍을까? 흥행은 염두에 두지 말고 가상해보자.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데 왜 살아야하는가? 무신론자인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도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게으르고 무식한 농민을 인간답게 대우하고 가르쳐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 시골귀족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사변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이 레빈이야말로 톨스토이의 대역일 테다. 그러면 레빈을 추켜세우느라 안나 카레니나는 한낱 타락한 여성으로 그려내도 될까? 그동안 많은 감독이 안나 카레리나에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긴 소설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러시아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독서를 곧잘 방해한다. 그럼에도 읽고 나면 고민거리가 무척 많아진다. 그래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존재론적 고민이 있더라도 선을 증대하는 데 이바지한다면 가치 있는 삶이라는 레빈의 깨달음에는 동의하게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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