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닫으니 집안이 후덥지근하다. 벌써 에어컨을 틀어야하나 생각하다가 뒤늦게 선풍기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더우면 에어컨부터 생각난다. 초여름 더위가 이렇게 독할진대 한여름은 어떻게 날지 벌써 숨이 막힌다.

이번 여름에 극한더위가 찾아오리란 건 올 초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첫 조짐이 보인 건 남극에서였다. 2월 9일 남극 대륙 북쪽의 시모어섬에서 낮 최고기온이 20.75도까지 올랐다. 남극 대륙에서 20도 넘는 기온이 측정된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연구진은 일회적 고온 현상이라 밝혔다. 남극의 더위가 지속되지는 않으리라 내다본 것이다.

그런데 두 달 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서 뜻밖의 전망이 나왔다. 1880년부터 시작한 기후관측 역사상 올해가 가장 더운 해가 될 가능성이 74.7%에 이를 것이라 발표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더운 상위 5개 연도에 포함될 가능성은 무려 99.9%에 달했다.

선풍기 이미지.
선풍기 이미지.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해는 2016년이었다.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따위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던, 오직 에어컨 바람만이 구원이고 휴식이었던 무겁고 진득한 더위를 기억한다. 집에서 요리하는 횟수가 줄고 샤워는 찬물로 하다 보니 8월 가스요금이 3000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었던지 난생처음 안구건조증이 생겼다. 결국 그해 가을, 이듬해를 대비해 에어컨을 설치했다.

당시 폭염의 원인은 태평양에서 발생한 강한 엘리뇨 현상이었다. 엘리뇨 현상은 바닷물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 겨울엔 엘리뇨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더위는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온난화의 원인은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때문인데 코로나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배출량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폭염 기간에 경로당ㆍ복지관ㆍ주민센터 등 일부 공공건물을 개방해 무더위쉼터를 마련하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올해는 가능할지 의문이다. 밀폐된 공간에 여러 사람을 모아 놓고 에어컨을 트는 건 코로나19 시대엔 위험천만한 일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한 지자체에서 ‘양산쓰기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체감온도를 10도가량 낮춰주고, 자연스레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심 양산’을 대여할 예정이라는데, 속 시원한 대책으로 보이진 않는다.

진짜 대책이 필요한 이들, 저소득층 가구나 쪽방촌 주민 등 소외계층의 더위는 양산으로 가릴 수 없다. 그들이 더위와 맞서는 최전방은 바로 집 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 안에서 밤낮으로 더위와 싸운다. 그러나 이겨낼 방도는 없다. 더위가 스스로 후퇴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미국 뉴욕에선 5월부터 저소득층 노인들의 가정에 에어컨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료 지원도 모색 중이고, 가난한 시민들이 일시적으로 요금 납부를 못하더라도 바로 전기를 끊는 일을 자제해 달라고 전기회사들에 요청하고 있다.

더위에 지칠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에어컨이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더위를 물리치고 삶의 질을 높여줄 최선의 해답, 냉방기구. 다른 묘안이 있을까? 그랬다면 나는 굳이 내가 시원해지는 만큼 바깥으로 열기를 내뿜는 에어컨을 내 집에 설치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에어컨 천국, 선풍기 지옥’을 이미 경험한 터다.

에어컨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풍기가 있던 자리에 작은 냉풍기 한 대를 들여놓은 누군가를, 그리고 그가 보낼 이번 여름을 상상해본다. 전기료 걱정 없이 냉풍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는 가장 시원해서 가장 따뜻한, 특별한 여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감상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겐 목숨이 달린 현실일 수 있다. 꼭 필요한 직접적 지원이 어려운 이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마음 편히 에어컨을 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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