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야구소녀(Baseball Girl)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최윤태 감독|2020년 개봉

[2020년 6월 18일 CGV인천 관람] 백송고등학교 야구팀의 주수인(이주영)은 첫 여자 고교 선수, 최고 구속 134km, 천재 야구소녀로 불린다. 여자선수를 처음으로 받은 고교 야구팀으로 이목을 끌며 창단한 만큼 백송고교 현관에는 그녀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백송고교 야구팀 창단 3년. 수인은 졸업을 앞두고 프로팀에 입단해 야구를 계속 하고 싶지만 정작 프로선수 지명을 받은 건 리틀야구단 때부터 늘 함께 야구를 했던, 그때는 수인보다 작고 야구 실력도 한참 아래였던 동료 정호(곽동연)다.

수인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단지 여자선수라는 이유로 프로 입단 테스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여자에게 프로야구 선수는 언감생심이라 생각하는 엄마 해숙(엄혜란)은 딸에게 상처만 될 게 빤한 도전을 포기하고 자신이 다니는 공장에라도 취직하길 바란다. 그나마 수인의 꿈을 응원하는 아빠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생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롭게 백송고교 야구팀 코치로 영입된 진태(이준혁)는 프로선수의 꿈을 접지 못하는 수인에게 모진 말로 포기하라 말하면서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프로 입단의 꿈이 좌절됐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수인의 간절함을 외면하지 못한다. 결국 수인의 옆에서 수인과 함께 결코 쉽지 않은, 가능성이 희박한 도전을 시작한다.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야구소녀’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소재인 영화지만 스포츠의 스펙터클보다는 남자만의 스포츠라는 편견이 팽배한 야구 판에서 자신을 믿고 꿈을 좇아 도전하는 여자 야구선수 수인의 고군분투를 차분하면서도 성실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보통의 고난 극복 영화처럼 순진한 판타지로 억지 해피엔딩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주류가 아닌 소수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지레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 차분히 말을 건다.

수인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할 때 모든 이가 불신했다. 동료, 교사, 감독, 심지어 부모까지도. 그러나 수인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누가 알 수 있냐며,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며,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는다.

포지션이 투수인 수인에게 야구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남자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 타자가 자신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은 남자가 아닌 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너클볼(공에 회전이 없기 때문에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은 솔기에 걸려 혼란스러운 난기류가 되고, 이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갖는 구종)’은 강속구, 즉 힘이 투수 능력의 기준이 되는, 그래서 남자선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야구의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다. 남성 중심의 기준 자체가 달라진다면 수인과 같은 여자선수도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그 도전이 곧바로 승리 혹은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코치 진태의 말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지는 않을 수 있다. 딸이 상처 입을까봐 공장에 가라고 등을 떠미는 엄마 해숙처럼, 실패를 기정사실로 둔 미래를 그리는 비극은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새로운 도전 자체가, 트라이아웃에서 만난 미국에서 온 여자선수 제이미(원혜련)와 수인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결국 수인의 백송고교 후배로 입학하게 될 또 다른 수인에게, 어딘가에서 너클볼을 던지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제이미와 수인에게 용기가, 응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상업적인 가치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도 끝내 여자 야구선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최 감독의 도전이 내게 용기와 응원이 돼준 것처럼. 섣부른 해피엔딩보다 쉽사리 희망을 거두지 않는 낙관의 힘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했으니.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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