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숙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인천지부 사무국장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10년이란 세월이 어마어마함을 표현한 것일 게다. ‘생활의 달인’이란 티브이(TV) 프로그램이 있다. 한 업종에서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일하면 신의 경지에 오를 만큼 능수능란한 솜씨를 선보인다는 것인데, 볼수록 신기하다. 켜켜이 쌓이는 세월이 능력자를 만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학교에는 크게 세 부류의 노동자가 있다. 교사 노동자들이 있고, 행정공무원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급식실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배식을 하고, 또는 교무실ㆍ행정실ㆍ과학실ㆍ전산실에서 일한다. 특수 아동ㆍ유치원 돌봄교실이나 방과후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이름만 비정규직이지 이들이 없거나 일을 멈추면 학교 운영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이들 중에는 20년 넘게 근무한 이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일당직이다. 그나마 2004 년부터 연봉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일당에 일한 날수를 곱하고 12개월로 나눠서 월급을 주고 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 입사할 때 받은 월급을 똑같이 주고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쌓아올린 달인의 능력을 학교와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이 학교에서 불리는 호칭은 아줌마, 여사님, ○○보조, △△씨 등이다. 맡은 업무가 분명함에도 쓰레기통 비우기, 설거지, 청소, 커피심부름 따위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이들의 몫이다. 종종 교장이나 관리자의 사적인 일에도 동원된다.

2010년 10월, 전라남도 학교비정규직노동자 2500여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2월에는 광주, 2011년에는 대전, 충남, 부산 등지에서 노조를 결성해 현재 전국적으로 1만 3000여명이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의 깃발아래 모여 있다. 이들은 ‘우리는 더 이상 학교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며, 우리의 노동이 아이들을 키우는 고귀한 것이기에 일한 만큼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노동자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고 처음 시작한 투쟁은 경력을 인정하는 수당 요구였다.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똑같은 월급을 바꿔 보고자 근무한 연수에 따른 수당 지급을 요구했고, 교과부에서는 지난해 2월, ‘장기 근무가산금’ 지급을 전국 시ㆍ도에 지침으로 내렸다. 호칭도 ‘보조’가 아닌 실무사 등으로 전환하고, ‘유령’이 아닌 학교에 재직 중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장기근무가산금이 3년에서 5년 근무한 자는 3만원, 6년에서 8년 근무한 자는 4만원으로, 3년마다 1만원씩 인상하는 생색내기 수당에 불과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그나마 없던 것이 신설되니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호봉제로 전환돼야한다.

그런데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안정이다. 일선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이라 인식하고 고용이 보장된다고 얘기한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11월 28일, 2년 이상 계속되고 향후에도 지속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제를 대상으로 원칙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채용할 계획이라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대책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 넘게 일한 학교에서 쫓겨나고 있다. 급식 조리원은 학생 수를 기준으로 150명당 1명 정도씩 채용되고 있다. 저출산시대이니 만큼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이에 따라 조리원 고용은 불안정하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학생 수가 줄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것이다.

또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려고 2년 고용 뒤 재계약을 거부하는 학교가 속속 생기고 있다. 교장들끼리 담합하거나 학교별로 2년 이상이 되지 않도록 순환 근무를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또한 1년이 아닌 10개월 근무 로 계약을 체결하는 학교도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일부 시ㆍ도교육청에선 무기계약직이 되지 않도록 계약 체결에 유의하라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단다. 정부가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건지, 정부의 지침을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011년 12월 말, 방학을 앞두고 많은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른 곳을 알아보라며 해고를 예고했다. 특히 3월 개학하기 전 1월 말에 무더기로 해고를 예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아침에 10년 이상 근무한 일터에서 아무 대책없이 쫓겨나는 것이다.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신망의 눈빛들에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학교에서 생활의 기술’은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17년 근무한 학교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오십이 넘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빛을 더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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