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영 구청장의 취약 동네 1박2일

▲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취약한 동네를 1박2일로 순회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부개1동 주민 몇 명이 밤 11시에 신진경로당에서 자는 홍 구청장을 위해 국수를 해왔다.<사진 출처ㆍ홍미영 구청장 페이스북> 이날 홍 구청장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얘기들 끝내고 동네 한 바퀴 돌며 민원 현장을 보고 왔더니 추운데 고생한다고 경로당 부근 주민들이 국수를 끓여놓았다. 세상에~ 웬 고생들이냐고 펄쩍뛰었지만, 꼭 한번 대접하고 싶었다며 직원들 국수까지 챙긴다. 정말 정 많은 동네이다. 경인전철 야간소음을 들으며 부개동과 하룻밤 인연을 쌓는 밤”이라고 소감을 올렸다.

“경로당이 예전에 무덤 위에 지은 것인데, 정말 을씨년스럽다. 겨울이라 더더욱 그런데, 경로당 회장님이 며칠 전 낮에 귀신을 보았다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로당에 자꾸 머물려고 하셨다. 쫓아내듯이 집으로 가시라고 했지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나만 쳐다보더라. 그 분의 맘이 읽혀지니 감사하고 고맙기도 했다. 다음 날 주민들이 귀신 이야기하면서 ‘귀신이 나타나도 민원 해결해달라고 부탁할 것’이라며, 동네의 어려운 상황을 비유하기도 했다”

취약한 동네에서 혼자 숙박을 하며,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진행하는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최근 청천1동 초원경로당에서 겪은 일화를 들려준 것이다.

홍 구청장은 11월부터 부평구 22개 행정동 중 취약 밀집 동네를 매주 2개 동씩 순회하고 있다. 근무시간에 잠시 들러 주민자치위원이나 통장 등과 간담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가 끝난 오후 8시부터 소외된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퇴근 후 주민들과 골목골목을 다니며 민원현장을 챙기고 있다. 잠은 동네 노인정이나 지역아동센터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주민들과 함께 골목길 청소도 한다. 2012년 2월까지 이를 이어갈 계획이다.

홍 구청장은 지난 11월 21일 청천1동 주택가 골목길 쓰레기 배출 현장과 장수산 체험 숲길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 여정을 시작했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부평2동 희망천 일대에서는 새벽 1시까지 북부환경 직원들과 함께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음식물쓰레기 수거운반 문제의 심각성을 체험했다.

이밖에도 산곡시장을 새벽에 방문해 민생현장을 돌아보며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십정2동 청소 대행업체인 그린환경 직원들과 쓰레기차에 몸을 싣고 현장을 돌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 홍 구청장이 11월 24일 새벽 부평2동 희망천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사진제공ㆍ부평구>

홍미영 구청장의 취약 동네 1박2일

12월 27일에는 청천2동 소담경로당에서 8차 ‘소통의 장’을 진행했다. 주민과 주민센터 직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홍 구청장은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문답식의 민원청취가 아니라, 동네의 역사와 맛집, 일 잘하는 공무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눴다. 13통 통장은 직접 만든 모시떡을 가져와 내놓기도 했다.

주민들은 신호등 설치, 주말 영아다방 부근 주차장 개방,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 도로 확장 등의 민원을 쏟아냈다. 홍 구청장은 “저 오늘 동네 민원만 들으러 온 거 아닌데. 여러분들 사는 이야기 듣고 싶어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연스럽게 민원에서 사는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를 이끌었다. 가게를 운영하며 때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주민과 통장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화 후 홍 구청장과 참가자 10여명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준공업지역이라 재건축도 어려워 텅 비어버린 집과 인도가 없어 학생 보행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용마초등학교 주변 지역도 방문했다.

또한 주민들과 상의하지 않고 마을버스 정류장을 옮겨 불편을 겪고 있는 현장, 2012년에 문을 여는 부평우편총괄국 공사 현장 등도 방문했다. 이곳은 한국지엠 부평공장을 이용하는 차량으로 통행량이 많은 데다 앞으로 우편총괄국이 문을 열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돼, 도로확장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밤 10시 30분이 돼서야 홍 구청장은 소담경로당으로 돌아왔다. 대다수 주민들은 돌아가고, 여성 주민 몇 명이 안쓰러운 듯 홍 구청장을 바라보다가 이것저것을 챙겨주고 돌아갔다. 한 주민은 “청장님 예쁘신데, 밤에 창호지 뚫고 쳐다보면 어쩌죠. 제가 함께 자면 안 될까요”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 12월 19일 밤 9시 부개1동 주민들과 함께 동네를 순회하는 홍 구청장.<사진제공ㆍ부평구>

주민들이 가고 난 뒤 밤 11시에 홍 구청장과 짧게 인터뷰를 했다.

▶ 얼마 전 70여일 동안 십정2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안에서 숙식을 했는데, 바로 이어 ‘1박2일’ 소통의 장을 진행하고 하고 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정을 계속하는가.

= 십정동에서 70여일 살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생활 현장에서 보는 것이 구청에서 업무보고 받는 것과 다르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주민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좋았다. 오늘 청천2동에 왔는데, 이곳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나눔과 봉사활동을 펼친 덕수갈비 사장(김오곤)님 이야기도 듣고, 어린이집 운영관련 얘기 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일신동에서는 동네에 대한 자긍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부개동에선 밤 11시에 국수해서 주는 따뜻한 서민의 정을 느꼈다. 행정은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구의 재정 여건이 어렵다. 돈 없는 단체장으로 민원현장을 보면 더욱 안타까울 것 같은데.
= 예산이 크게 들어가는 부분이 동네마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애로사항도 돈 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계단 세 개만 더 놓으면 편해질 수 있는 민원, 끊어진 골목길 연결하는 민원 정도다. 경로당 민원이 많은데, (예산문제) 설명하면 이해한다. 경로당도 쌀 한 포대, 고장 난 싱크대 고쳐달라는 것들이다.

▲ 12월 27일 홍 구청장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 여덟 번째로 청천2동 소담경로당을 찾았다. 사진은 홍 구청장의 잠자리 짐.

“귀신도 청장님에게 민원 부탁할 거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주민은?
= 일신동 주민들이 기억에 남는다. 일신동에 거마산이 있는데, 주민들은 부평의 첫 동네라고 하면서 자부심이 높았다. 장애인이 사는 주공아파트에서 잠 잘 때 바퀴벌레가 얼굴로 기어다닐 정도로 많은데, 그 장애인을 씻겨주고 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사했다. 마을이 작은 공동체로 똘똘 뭉쳐있었다. 동네별로도 다 특성이 있다. 산곡동, 청천동 특성이 다 다르고, 역사가 달라 차이가 났다. 동네가면 ‘예전에 어느 공무원이 정말 열심히 했다’는 주민들이 전하는 미담이 꼭 나온다. 구청에서 보지 못한,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는 모습 보면 흐뭇하다.

▶ 계속 혼자 자나? 무섭지 않나?
= 계속 혼자 자고 있다. 십정동에서 70일 살았다. 십정동에서 혼자 잘 정도면 더 무서울 것이 없다.

▶ 침대 쓰다가 바닥에서 자면 불편할 텐데?
= 불편하지 않다. 보통 밤 11시에 끝나서 인터넷 좀 하다가 새벽 6시에 일어나 동네 청소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야전에 강한 편이다.(웃음)

내가 십정동에서 이력이 났다. 만석동과 십정동에서 살았는데, 인천에서 만석동과 십정동 해방촌보다 더 열악한 곳이 없다.(홍 구청장은 1980년대에 빈민운동을 위해 만석동과 십정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 공무원 급여도 본예산에 편성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단체장으로 이렇게 순회하면 힘든 게 많을 것 같다. 민원도 해결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더욱 힘들 것 같다.
에너지도 상호간에 얻는다. 돈 없어 시간외수당도 못 주지만 청렴도 인천 1등, 국정평가 1등 했다. 돈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아니다. 주민들도 이해하고, 오히려 주민의 소소한 부분도 더 힘이 된다.

▶ 에피소드도 많을 거 같은데.
= 초원경로당(청천1동)에선 노인회장이 ‘소통의 장’ 끝나고 집에를 가지 못하시고 계속 나만 쳐다보다가 가셨다. 그 경로당이 예전에 무덤이 있던 곳에 지은 것이라, 걱정이 컸던 것이다. 더욱이 회장님이 낮에 귀신을 봐 걱정이 많았다고 다음날 전해주시더라. 경로당이 오래돼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내가 다음날 ‘귀신 끼고 잘 자서 걱정 없다’고 했더니, 주민들이 ‘귀신도 나타나서 청장님에게 민원 이야기 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부평2동에서 음식물쓰레기 수거 현장을 직접 보고 수거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 됐다. 생활폐기물과 음식물쓰레기 수거 현장은 새벽시간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 분들이 겨울에 일하기가 제일 어렵다고 했다. 또한 음식물쓰레기 치우면서 소음이 발생해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내 고개가 숙여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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