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도시농업의 나라 쿠바를 가다 ③

▲ 트리니다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카리브해의 보석, 트리니다드

트리니다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앙콘 해변은 플로리다와 접한 바라데로 해변과 함께 유명하다. 말로만 듣던 카리브해에 추운 날씨에도 일광욕을 하는 관광객이 꾀나 있었다. 정작 우리는 생각보다 추워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한 바퀴 돌아보았다. 트리니다드 도로는 특이하게 모두 돌바닥으로 모자이크처럼 깔려있다. 프랑스인들이 정착해 만들어진 작은 마을은 번성하던 시절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탕수수 대농장을 중심으로 대저택을 거느린 부호가 있었던 흔적과 쿠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쿠바는 어느 도시이건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됐다.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도 마야모 광장과 그 주변이다. 직접 만든 것 같은 예술작품들을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첫날이라 대략 둘러보고, 밤에 열릴 파티 현장을 보러 다시 마르티 광장으로 향했다.

▲ 쿠바는 어디든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의 중심가가 형성돼있다.
▲ 해가 지자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골목 곳곳에서 신나는 음악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본무대 공연은 10시께 시작했는데,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흥겨운 축제가 계속됐다. 특히, 아주 어려보이는 아이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까지 모두가 광장에 나와 즐기는 모습은 ‘쿠바의 문화’를 실감하게 했다.

이튿날, 작은 도시이지만 볼거리가 많은 트리니다드를 둘러보는 데 한나절이 다 걸렸다. 성프란치스코 성당과 대저택 등은 모두 입장료를 받았다. 지금은 모두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쿠바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바나를 제외하고 트리니다드 인 것 같다. 도시 어디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 쿠바의 토속적인 느낌이 나는 다양한 수공예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쿠바 노동자는 일하는 척을 하고, 쿠바 정부는 노동자에게 돈을 주는 척 한다’는 쿠바사회의 실상을 표현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공영공장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물건을 뒤로 빼돌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을 트리니다드에서 까사(=민박집)로 데리고 온 청년이 저녁을 먹을 쯤 ‘시가’를 여러 세트 보여주는 것을 보고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까사 주인은 친구가 공장에서 빼돌린 시가라고 했다.

쿠바는 시가로 유명하기도 하다. 브랜드로 몬테크리스토와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있다. 까사 주인은 시중에선 굉장히 비싼데 싸게(시중가의 3분의 1 정도) 사라고 했다. 실제 나중에 정식 가게에서 가격을 보니 꾀나 비쌌다. 우리 일행은 돌아갈 때 선물로 ‘빼돌린 시가’를 샀다. 그리고 손으로 만든 작은 악기와 여러 가지 씨앗으로 만든 목걸이도 트리니다드에서 샀다.

▲ 산타클라라는 체게바라의 기념관이 있어 유명하다.
▲ 수도 아바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타클라라에서 혁명군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다준 사건이 있었다. 무기를 실은 정부군 장갑열차를 전복시킨 사건을 기념한 장갑열차박물관의 불도저.
산타클라라의 혁명유적지

트리니다드에서 1박2일 일정을 마치고 떠난 다음 행선지는 산타클라라였다. 택시 대신 비아술을 이용하기로 했다. 중국제 대형버스들이 쿠바 곳곳을 누비고 있다. 재미있는 건 ‘중국산 버스를 도입하고 1년 만에 지붕에서 비가 샜다’는 가이드의 말이었다. 어찌 됐든 쿠바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고급 대형버스가 관광용으로 굉장히 많이 다니고 있다.

산타클라라는 관광지는 아니다. 다만, 체게바라 기념관이 있어 한 번씩 들러 가는 코스이긴 하다. 우리도 다음날 첫 방문지로 체게바라 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 안쪽에는 체게바라와 관련된 다양한 유품과 혁명의 흔적들이 전시돼있다. 산타클라라가 쿠바 혁명의 승리를 굳히게 된 중요한 도시이기에 체게바라의 기념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혁명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많은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까밀로 시엔푸에고스와 체게바라 사이의 일화가 많다. 둘이 목숨이 오가는 전쟁 중에 주고받았던 편지에 섞인 농담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기념관에는 당시 편지들이 전시돼있으나 스페인어를 모르니 감흥이 덜했다.

산타클라라의 중심에 있는 광장과 인디펜덴시아 거리, 정부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혁명의 승리를 가져오게 한 장갑열차박물관 등이 그나마 볼거리였다. 아바나나 트리니다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차들이 자동차와 함께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특이했다.

▲ 전망대에서 본 비냘레스 계곡.
생태관광지 비냘레스

다음날, 다시 긴 여행을 시작했다. 서쪽 끝에 있는 비냘레스로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 늦게 도착했다. 비냘레스는 시골이다. 쿠바는 산이 드물다. 거의 모든 국토가 평지다. 혁명군이 처음 게릴라로 활동했던 시에라 마에스트로 정도의 산맥을 제외하고는 산을 찾아보기 힘들다. 비냘레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태관광지로 유명하다. 쿠바에서 보기 드문 산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다. 일행은 비냘레스를 도보로 여행하기로 했다. 비냘레스 둘레길을 개척하자고 말한 뒤. 관광코스를 하루 종일 도보로 돌고 숙소로 돌아왔다.

멀리 보이는 장관들을 보면서 걷기로 하고 쿠바의 시골 들녘을 걷기 시작했다. 농지와 산들 사이로 나있는 작은 길들을 따라 가다보면 가끔 집들도 나왔지만, 넓은 들판이 계속됐다. 비냘레스의 관광코스인 담배농장과 전망대를 거쳐 벽화를 돌아 산맥을 한 바퀴 빙 돌아오면서 쿠바의 자연을 볼 수 있었다. 쿠바는 원래 80~90%가 숲이었다고 한다. 그 숲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다. 사탕수수를 심기 위해 산림을 훼손한 것이다. 지금은 산림률이 20~30% 정도. 걷다보니 실제 황량한 들녘이 많았다. 트랙터를 보기 힘들었고, 가끔 소로 밭갈이를 하는 장면이 볼 수 있었다. 들판이 모두 농지로 이용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 넓은 농지가 있는데, 왜 빈국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점심으로 바나나와 구아바로를 챙겼지만, 한참을 걷다보니 허기가 지고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한 노인이 우리를 불렀다. 코코넛 좀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쿠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코코넛을 먹어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던 참이었다. 노인은 작대기로 코코넛을 따서 칼로 쪼개줬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노인은 집 옆에 있는 커피나무도 구경시켜 줬다.

▲ 코코넛 대접을 받았다. 결국 늙은 농부의 목적은 시가를 파는 것이었지만,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맛있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노인은 손수 만든 것 같은 시가를 꺼내들고 나왔다. 싸게 줄 테니 사가라는 것이다. 이미 트리니다드에서 ‘빼돌린 정품’을 구경한지라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코코넛을 잘 얻어먹었다며 사례를 했다. 그건 선물이었다고 사양하는 것을, 억지로 쥐어주고 나왔다. 늙은 농부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내비쳤다. 한적한 시골 농가에서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CUC 벌이가 일반화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바는 화폐를 두 가지 쓴다. 현지인들이 쓰는 이른바 쿠바 페소가 있고, 외국인(관광객)들이 쓰는 컨버터블 페소(CUC)가 있다.

비냘레스는 떼 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관광지이지만 쿠바의 시골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비냘레스에서 2박을 하고 다시 아바나로 향했다. 아바나로 가는 길에 택시가 고장이 나 잠시 피냐 델 리오도 구경했다. 이 지역은 담배가 유명하다.

우리는 쿠바에서 처음 숙소로 묵었던 까사를 다시 찾았다. 주인이 편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다. 마침 그 까사에 한국인 신혼부부가 묵고 있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비오는 그날 밤을 다시 럼과 맥주로 보냈다. 이제야 쿠바가 눈에 익고, 밥이 먹을 만하고, 두려움 없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