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수필가 배천분씨

시와 소설로 밤을 지새우며 ‘문학소녀’를 꿈꿨다. 그 꿈을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도 이어가고 있는 이가 부평에 있다. 수필가 배천분(54ㆍ산곡동ㆍ사진)씨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수련회 책자를 혼자 만들었어요. 그땐 ‘가리방(=등사기)’이라고 불렀는데, 한 장 한 장 밀어 인쇄해 책을 만드는 게 정말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에 들어가 교지를 만들었다. 결혼을 한 후에는 계속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늘 문학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다 서른일곱이던 1994년, 인천여성문화회관 시창작교실에 들어가면서 문학인생 2막이 시작됐다.

“시창작교실에서 수강생들과 쓴 시를 읽고, 서로 느낌을 나누다보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났죠. 그때부터 계속 글을 썼어요” 이후 2000년 ‘문예비전’ 수필부문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4년에 발간한 수필집 ‘그녀를 쫒아가는 봄빛’에는 그간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남편과 결혼하게 된 사연과 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심정,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마음까지. “수필을 펜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말하는데, 그 속에 나를 드러내야 해요. 가식은 안 통하죠. 수필집 한 권으로 내 과거가 다 드러나 가끔 창피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고,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 보람도 있어요”

수필 속에는 자신만 들어나는 게 아니다.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맘을 놓지 말아야 한다. 어느 글, 어느 대목에 자신이 등장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인 아들 출근 준비를 하느라 방학인 요즘이 오히려 더 부산스럽다. 컴퓨터 앞에 앉아 빈둥거리는 게 보기 싫었는데, 그나마 현실을 접해보려는 노력이 가상해 아침상을 차리는 마음이 그다지 번거롭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기찬 선물’이라는 글에는, 아들이 등장한다. 무거운 박스를 옮기느라 어깨에 빨간 물집이 잡힌 걸 보고 안쓰러워 ‘좀 쉬운 일을 찾지 그랬냐’고 말하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대답. 평소와는 다른 어른스러운 모습에, 뭔가 미심쩍음을 느낀 배씨가 추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팔찌를 선물하려고 그 고생을 하는 것이란다.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른 제 어미를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 않던 녀석 아니던가. 배신감에 물을 따라주는 손이 떨렸다’(125쪽)

이어진 글에서, ‘들뜬 모습으로 휘파람을 불며 집을 나서는 아들을 흘겨보는데 문득 20여 년 전의 남편’ 모습이 배씨에게 떠올랐다. 남편도 첫 월급을 자신에게 고스란히 가져다주었던 것. 배씨는 순간 시어머니를 떠올린다. 남편의 월급봉투는 그때까지 늘 배씨 차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의 글 속엔 일상의 고백에 더해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에겐 수필가 이외에 또 다른 직함이 있다. 부평구문화예술인협회 수필분과장, 그리고 기자. 부평구에서 발간하는 ‘부평사람들’에서 16년째 기자로 뛰고 있다.

“제 이름이 특이한 데다 기자를 오래해서인지, 배천분이란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기자를 하면서 늘 주변 사람들 인터뷰만 했는데, 제가 인터뷰를 당하기는 처음이네요”

그는 내년에 두 번째 수필집을 내놓을 생각이다. 그동안 지원금을 받아 발간하려고 몇 번 신청을 했지만, 워낙 지원 범위가 좁아 번번이 떨어졌다. “문화재단에서 지역문화인을 키우고 발굴해야 하는데, 작가들에게 지원하기보다는 사업하는 단체들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들이 원고료 받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니, 책이라도 지원받아서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작가에게 책이 나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글이라는 건, 그냥 삶 자체에요. 누구든 자신의 삶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죠. 글 쓰면서 울고, 웃고… 거창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내 생활이죠” 글을 쓰지 않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 인터뷰를 마치고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에 노란 은행잎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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