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석행 인천시 노동특별보좌관 … 삼화고속ㆍ한국지엠 비정규직 문제 막후서 해결


▲ 이석행 송영길 시장 노동특보. 
“고민이 많았다. (송영길) 시장으로부터 제안(=노동특별보좌관) 받고 3개월이나 망설였다. ( 안희정 충남) 도지사가 정무부시장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송 시장의 출마를 강권했던 사람으로 무엇인가 도와줘야하겠다는 맘이 컸다. 더욱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인천에서 특별한 일을 못해 아쉬웠다. 나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알파(=도움)’가 된다면 나를 버리자고 생각했다”

“(노동조합) 위원장들 불러서 마지노선을 지키는 것으로 위임을 받아냈다. 고맙게도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라고 나를 믿어주었다. 시장과 노조에게 위임받아 (삼화고속) 사측을 더 압박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대표이사 불러서 타협안을 만들었더니, 다음엔 회사가 다른 안을 가지고 나왔다. 그로 인해 파업이 2주나 더 지속됐다”

5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으로 송영길 인천시장 노동특별보좌관(이하 노동특보)을 맡고 있는 이석행(52)씨가 들려준 노동특보를 수락한 배경과 최근 타결을 이끌어낸 삼화고속 파업이야기다.

이 노동특보는 민노총 위원장직을 수행하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 집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2008년 구속됐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열 번이나 기소됐다. 실형을 두 번 살았고, 여덟 번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가끔 강연을 다니는데, 우스갯소리로 네 번만 더 구속되면 나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과10범인 셈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전과14범이었다. 전과가 조금 부족하다(웃음)”

이 노동특보는 노동운동에 열중하느라 수년간 팽개친(?)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노동특보 일을 하면서도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출근해 현장에서 기름밥을 먹는다. 11월 23일 인천시청 앞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시청에 특보 책상이 있지만 거의 들어가지 않고 전화로 일을 본다는 이 노동특보는 “책상에 앉아있으면, 공무원들 부담만 더 갖는 것 같다. (시에서) 월30만원 업무추진비 카드를 줬으나, 반납했다. 시청 주차요금도 내 돈으로 낸다”고 말했다.

▲ 이 특보는 이날(23)도 인천시청 후문에서 농성중인 농성장을 찾았다.

“삼화고속 파업, 11월 첫 주에 끝낼 수도 있었는데”

이 노동특보는 먼저 삼화고속 파업사태가 11월 초에 해결될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삼화고속 노사는 지난 15일 합의를 통해 17일부터 버스노선을 정상 운행하고 있는데, 이 특보는 노사 협의를 막후에서 조정해냈다.

“송 시장이 나서서 해결하려기에, 내가 해결하겠다며 전권을 위임받아 노사를 만나 들어갔다. 사장은 처음엔 겁을 내거나 부담이 커 보였다. 술자리에서 한 시간 이상 한풀이를 들어주고서야 교섭테이블로 이끌었다. 황일남 민주버스인천지부장과 나대진 지회장 등도 나를 믿고 위임해줬다”

그는 이어서 “10월 말 교섭을 통해 삼화고속 파업을 종료할 수 있었으나, 회사가 약속하고 교섭테이블에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가 철이 없으니 우리가 양보하자’고 노조에 이야기했을 정도다. 회사가 잘 몰라, 파업이 2주나 더 지속됐다. 노조도 양보했지만 근무형태 등 얻을 것은 얻었다”고 말했다.

이 노동특보는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안긴 삼화고속 파업사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한 뒤, 노조를 적대하는 노사정책은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화고속 파업과 같은 사태를 없애기 위해선 광역버스 노선에 대한 준공영제를 실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송 시장도 준공영제를 하고 싶어 한다. 시 재정여건이 너무 열악하다. 장기적으로 준공영제를 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시내버스 등에 대한 감사를 통해 서비스 질을 끌어올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지엠 비정규직ㆍ인천지하철 해고자 문제 등도 해결

송 시장은 이 특보를 임명해 인천지역 주요 노동현안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이 노동특보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고공농성으로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한국지엠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이끌어냈다. 당시에도 송 시장의 위임을 받아 한국지엠 경영진을 직접 만나 노사합의를 견인했다.

또한 최근, 10여년 전에 해고된 인천메트로 노동자 5명 전원을 복직토록 했다. 인천건설노동자들을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신축 건설 현장에 우선적으로 고용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시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특보는 “이들에 대한 정규직화를 건의해 거의 될 뻔 했는데, 송 시장 측근이 이를 막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아쉽다. 좀 더 노력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석행 특보는 자신에 대한 시선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서도, 평가는 무덤에 갈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난 행복, 평가는 무덤에서”

이 특보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다니다가 요즘 특목고라고 할 수 있는 전북기계공고에 입학했다. 그 뒤 1977년 대동공업(경남 진주)에 입사해 노동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80년 민주화의 봄으로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 84년 4대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95년 전국자동차산업연맹 부위원장을 거쳐 5기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했다. 인천 계양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노동특보를 맡은 것과 관련, 함께했던 동지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솔직히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고, 지금도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본다”며 “폼 잡는 것보다 노동자를 위해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노동특보는 큰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2000년 초에 수배 중 특진(=수배자를 검거할 경우 특별 승진)이 걸려서, 경찰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애 학교에 가서 아이 짝에게 ‘혹시 아버지 만나러 가면 알려 달라’고 말해, 그 말이 퍼져 큰애가 왕따가 됐다. 다행히 선생님이 잘 살펴줘 아이가 괴로워하다가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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