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뿌리내린 지 근 100년. ‘뽕짝’으로 비하되고 일본 ‘엔카’의 아류로 폄하됐다. 사람들은 하층민, 중장년층, 저속함이라는 틀로 바라봤다. 구시대적이고 낡았다는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로트는 우리의 가난했던 삶과 아픔과 슬픔과 기쁨 곁에 늘 함께 있었다. 전통적인 대중가요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 같은 행사도 열리는 걸 보면 남녀노소가 즐기는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중·고교 교과서에 트로트 등 대중가요가 실리기는 무리인가 보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음악이라면 트로트 등도 교과서에 실리면 어떨까 싶다.

혹 트로트는 ‘성인가요’라는 저변의 인식이 이를 방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터넷에는 트로트를 대신해 ‘성인가요’라는 명칭이 많이 올라 있다. 방송에 출연한 가수들 가운데도 ‘성인가요’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방송 뉴스에서도 보인다. 신문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4년 전부터 무명의 트로트 가수 7명에게 접근해 성인가요 차트의 순위를 올려주는 대가로 모두 4억원을 챙겼습니다” “성인가요나 포크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설 무대는 점점 좁아졌다” “초등학생들이 출연해 웬만한 가수 뺨치게 성인가요를 잘 부른다”

신문과 방송은 대부분 ‘트로트’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상에서도 ‘트로트’가 널리 퍼진 데는 신문과 방송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성인가요’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조금은 점잖고 고상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에서 좀 쓰인다고 마구 쓸 일은 아니다. ‘성인가요’라고 하면 말 그대로 성인들이나 부르는 노래로 여기게 된다.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가 열리는 판에 청소년들이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장르로 여겨질 수도 있다. 청소년보다 성인들이 더 많이 부르는 장르라고 ‘성인가요’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시 대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선입견을 갖게 한다. 객관성도 잃게 된다. 관습적으로 불분명하게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다.

“시민의 날 기념식 둘째 날인 24일에는 풍물, 고전무용, 민요 등 흥겨운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10~11일과 17~18일 현대무용 기획공연을 선보인다”

여기서 ‘고전무용’이 어느 나라 무용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우리나라 전통 무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현대무용은 서양식 무용이라고 받아들인다. 이제 ‘고전무용’은 우리나라만의 무용을 가리키는 말이 됐는지도 모른다. 한데 고전무용은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에도 있다.

현대무용은 서양의 무용으로만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 것은 헌것이고 서양 것은 새것? 알게 모르게 이렇게 여기며 써 온 것일 수도 있다. ‘고전무용’은 달리 ‘한국무용’이라고 사용한 예가 보인다.

‘명품 시계’에서 ‘명품 시금치’, ‘명품 교육’까지 ‘명품’이 아니면 장사가 되지 않는가 보다. 여기저기서 ‘명품’이 넘쳐난다. 기사에까지 무비판적으로 밀려들어 와 버렸다. “대중적 인지도를 얻고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신상앓이’를 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매출도 명품과 저가 제품이 나란히 약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부분 고가품 또는 사치품으로 불리던 상품들에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표현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경우 한국어문기자협회장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방송>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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