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과학이야기 23. 마리 퀴리

한 남자가 광석덩어리를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서랍 아래엔 사진판이 깔려 있었다. 얼마 후 사진판을 꺼냈을 때, 가장자리도 아닌 사진판 한가운데가 빛에 반응해 색이 변해 있는 걸 발견했다.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포장해 놓았는데 말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사진판 위에 올려놓았던 광석덩어리가 알 수 없는 빛을 방출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됐다.

그는 이 광석덩어리를 조교에게 던져주었다. 조교는 얼마 전 폴란드에서 이민 온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라는 여성이었다. 마리는 광석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빛을 내는 두가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발견한 원소엔 조국 폴란드의 글자를 따 ‘폴로늄’이라 이름 지었고, 나중에 발견한 것은 빛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따 ‘라듐’으로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광물이 빛을 내는 현상을 ‘방사능’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실험한 돌멩이는 우라늄 광석덩어리였다.

그는 바로 마리 퀴리다. 퀴리는 남편의 성이다. 당시 폴란드에서 여성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 마리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소르본 대학생 1만여명 중 여학생은 200여명뿐이었다.

방사능의 발견으로 마리 부부, 그리고 광석덩어리를 사진판 위에 올려놓았던 베크렐 교수는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여성으로서 첫 노벨상 수상이었다.

‘빛’으로 라듐을 발견한 마리는 우라늄 광물덩어리에서 라듐을 ‘물질’로 추출해내기 위해 실험을 수천 번 한다. 드디어 1902년, 마리 부부는 조그만 유리 병 속에서 파란 빛을 내고 있는 라듐 0.1그램을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라듐의 존재를 안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이 기술로 마리는 1911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아 역사상 최초로 노벨상을 두 번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방사능은 새롭고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치약에 방사성 원소인 토륨을 넣기도 했고, 심지어 뉴욕의 글렌 스프링스 호텔은 ‘방사성 미네랄 온천’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 라듐은 암 치료에도 사용됐다.

그때 누군가 마리에게 말했다. 라듐으로 특허를 내면 백만장자가 될 거라고. 하지만 마리는 오히려 라듐 분리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했다. 그가 한 말은 유명하다. “라듐의 소유자는 지구다. 그 누구도 이것으로 이득을 취할 권리는 없다. 원소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생활용품에 방사성 물질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건 1938년부터였다. 마리는 1934년 방사능 중독으로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도 마리 부부는 각종 질병과 통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마리가 죽은 후 그의 집을 조사해보니, 집안 곳곳이 엄청난 양의 방사선으로 오염돼있는 것이 밝혀졌다. 1890년대에 그가 사용했던 서류와 요리책에서도 여전히 방사선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의 실험노트들은 납으로 밀폐된 통 속에 보관돼있고, 보호복을 입은 사람만이 볼 수 있다.

올해는 바로 마리가 노벨화학상 을 받은 지 100년 되는 해이면서,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화학의 해’이 기도 하다. 마리는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비밀을 안다고 할 지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

이비에스 다큐 지식채널-이(e)를 보면 ‘우라늄 1그램으로 석유 3.2톤과 맞먹는 에너지를 낼 수도 있고, 티엔티(TNT : 강력한 폭발성 화학 물질) 21톤이 가진 파괴력과 맞먹는 핵무기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라늄을 가진 것 자체가 곧 막강한 권력이 되는 것이다.

마리가 지금 세상에 환생한다면, 자신의 눈부신 업적을 한탄하며 과학자 대신 반전ㆍ환경ㆍ이주ㆍ여성운 동가가 되지 않을까? 물론, 노벨상을 못 받을 수도, 화폐에 얼굴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