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단체와 공연장, 지역문화 활성화 위해 ‘한 지붕’

밥만 먹고 살 수 있을까? 물론 있다. 여기에 한 단어만 보태 다시 질문해보면 어떨까. 밥만 먹고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생활이 해결되면, 새로운 욕구가 생긴다. 일과 사람, 복잡한 관계 속에 부대끼는 동안, 나도 모르게 단단해진 감정과 지친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이럴 때 힘이 되는 건 바로 ‘문화와 예술’이다. 하지만 문화생활은 상당수 사람에게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주말 극장은 사람들로 붐벼 혼을 쏙 빼놓기 일쑤고, 보고 싶은 공연 입장료는 터무니없이 비싸 볼 엄두도 못 낸다. 눈 딱 감고 입장료를 결제했다고 해도, 서울까지 올라갈 생각에 공연 보려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지역민들의 문화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부평아트센터(이하 아트센터)’가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아트센터는 ‘모두가 함께 나누는 예술’을 선전문구로 해,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전문성이 강화된 예술교육으로 지역 공동체를 위한 ‘문턱 낮은 참여마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지역에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지역 문화가 낙후된 상황에서 시설을 채우는 프로그램이 지역 색을 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나 전기처럼 모든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이 공급되기 위해, 즉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지역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따라서 그 지역을 기반에 둔 문화예술단체를 키우는 것은 시설이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지역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상생 해법 ‘상주단체제도’

▲ 2010년 4월 부평아트센터 커뮤니티홀에서 ‘공공극장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해 열린 한일 국제심포지엄.<부평신문 자료사진>
문화체육관광부에선 2009년부터 ‘상주공연장-상주예술단체 육성 지원 사업’ 정책을 내놨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 중 상주단체를 선정해, 그 지역 공연장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다. 공연장은 상주예술단체를 통해 우수한 레퍼토리(=무대에 설 수 있도록 준비된 공연을 뜻함)를 확보할 수 있고, 관객 유치와 공연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한편 예술단체는 공연장으로부터 사무실과 연습실을 제공받고, 대관료 없이 무대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공연장의 전문 인력과 홍보마케팅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공연장과 예술단체가 서로 약점을 보완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사업이다.

부평아트센터엔 상주단체 두 개가 있다. 극단 ‘십년후(대표 최원영)’와 ‘구보딴츠떼아터(대표 장구보)’가 상주단체로 선정돼 지난해 8월부터 올 12월 말까지 아트센터와 한집살림을 하고 있다.

상주단체로 선정되면 인천문화재단으로부터 900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중 20%(1800만원)는 극단 운영비로, 또 20%는 아트센터 홍보비 등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60%(5400만원)로 공연이나 지역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마련한다.

상주단체 만료기간을 두 달 앞둔 지금, 두 단체와 아트센터는 이 제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상주단체 “자생력 키워야하는데, 수치화된 평가는 부적절”

‘극단 십년후’ 고동희 실장은 “작년 7월 말에 아트센터에 입주했다. 사무실과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얘기했다. 많은 극단들이 따로 사무실을 마련하기 어려워 대표의 핸드폰 전화번호가 곧 단체의 연락처가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극단 ‘십년후’는 1994년 창단해 인천과 전국 연극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단체로, 인천연극계의 중심축을 이뤄왔다. 상주단체로 선정되기에 제격인 셈. 하지만 그 성과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제도는 분명 좋은 제도다. 모든 지원과 정책이 서울로 집중돼있고, 지역 문화에 관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 문화단체와 공연장이 서로 협력하는 상주단체제도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다” 고 실장은 이어 “상주단체제도는 단계적인 목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시작한 첫 사업이니 만큼, 그 목표를 어디까지 둘 건지 기준이 필요한데, 현 상황은 상주단체를 평가하는 기준 때문에 (상주단체로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상주단체가 무대에 올린 공연을 ‘객석 점유율’과 ‘유료관객 수’ 등 수치화된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연 단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것은 이 제도의 주요 목적 중 하나다. 하지만 현 평가 기준은 이미 자생력이 있는 단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그러면 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단체를 만들기보다, 이미 관객들에게 인식된 레퍼토리를 가진 단체가 로테이션되는 공연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끝으로 “이건 단순히 공연장과 공연단체 사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단일화된 기준으로 공연을 평가하는 우리나라 문화계의 전반적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공연장 “극단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 내놔야”


아트센터 조경환 관장은 이에 대해 “우리는 상주단체 공연이 흥행이나 수익면에서 다른 공연에 비해 저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한 뒤 “상주단체를 선정할 때 단지 흥행이나 수익을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공연장에서 무용단(=구보딴츠떼아터)을 상주단체로 선정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기초예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또 “지난 9월 ‘십년후’와 함께 한 공연 ‘당신만이’는 대학로에서도 공연할 예정인데, 관객들에게 많은 관심과 인기를 받았다. 이렇게 극단의 이름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활동력을 높여가는 것은 극단이 홀로 서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극단의 가능성과 희망을 봤다”며 “상주단체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서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하지만, 관객의 수가 (공공극장) 예산 집행의 근거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장 입장에서 (상주단체 공연이) 수익보다 지출이 많더라도 계속 지원해야한다는 논리로 (예산을 주는) 기관(=지자체 등)을 설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조 관장은 “상주예술단체 지원 사업이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사업이다 보니 예술단체와 공연장의 긴밀한 대화가 더욱 절실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지원사업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해,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해야한다. 인천지역 문화예술 육성과 발전에 좋은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공연은 땀의 예술이다. 작품에 몰입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한다. 아트센터는 지역 공공극장이니만큼, 지역 단체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가고 싶다. 지역민에게 신뢰를 얻는 작품을 만들어 ‘지역민이 지역 예술을 소비하는 좋은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트홀 소풍, “문화 수용자인 관객에 답이 있어”

부평아트센터가 아닌 다른 공연장 상주예술단체 지원 사업은 어떨까? 인천문화재단에서 이 사업의 또 다른 공연장으로 선정한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소속 소극장 ‘아트홀 소풍’에는 극단 ‘미르 레퍼토리’가 상주해있다. 이곳 공연장과 상주단체 사이의 협력관계는 전국에서 모범사례로 꼽힌다.

‘아트홀 소풍’ 김경원 기획실장은 “상주단체제도의 취지는 지역 극단과 공연팀들이 조금 더 발전하고 창작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 결국 지역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주 극단이 아동, 청소년,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연극교육을 열었는데, 포스터 붙이고 아무리 홍보해도 모집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우리 공연장이 갖고 있는 관객 데이터를 통해 교육생을 연결해줬다”고 전했다. 극단과 공연장이 각자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나눠서 한 것이다.

그는 또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극단 실무자와 함께 회의를 했다. 지금은 관계가 가까워져 한 달에 한 번 ‘아주 특별한 소풍’이라는 와인파티를 연다. 서로 관계있는 예술가와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더 깊은 소통이 이뤄지는 것 같다”며 일상적인 소통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임승관 대표는 “현 상황에서 지역 문화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예술단체는 극히 드물다. 지금 스포츠 경기에 관객이 들고 관심이 몰리는 것은 20여년 전부터 스포츠 저변의 정보와 문화가 확대됐기 때문”이라며 “그에 비해 시민문화 영역은 방치된 지 20년이 넘었다”고 지적했다.

임 대표는 “상주단체제도는 공간 주인과 창작예술가가 함께 예술문화를 만드는 실험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현 시점에서 공연장과 공연단체는 모두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문화 수용자인 관객과 공연장, 공연단체를 통틀어 ‘문화생태계’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바로 관객이라는 것. 임 대표는 “경쟁력 있는 공연과 단체는 바로 관객들이 만든다. 소비자가 상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공연단체도 스스로 관객을 만들 노력을 해야 하고, 공연장은 공연단체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사업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선, 부평아트센터가 위치한 십정동 주민과 무엇을 할지부터 출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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