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군기지에 환경조사를 해” “부평에 있던 미군들이 다른 곳으로 가는데, 쓰레기를 많이 버렸어. 그런데 어떤 쓰레기가 있는지를 모르거든. 그래서 조사를 하자는 거야”

“버린 사람들은 알잖아?”“그렇지. 그런데 미군들은 자기들이 어떤 쓰레기를 버렸는지 알려주지 않는 거야. 치우지 않고 그냥 이사 가겠다는 거지. 그래서 진실을 밝히려고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거야”

“쓰레기 버리면 버린 사람이 치워야한다고 했는데, 미군은 안 그래?”

우리는 환경오염 진상 규명과 조사, 환경오염 치유와 복원, 미군기지 조기 반환, 한미주둔군지위에 관한 협정(SOFA)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을 하던 중에 듣게 된 이야기다. 우리들의 이런 주장이 아이의 눈에는 아주 단순명쾌하게 보였나보다. ‘청소하고 돌려줘’라는 상식으로. 그래서 지난달 13일 부평미군기지 환경조사 촉구 걷기대회에서 등장한 구호가 ‘청소하고 돌려놔’였다.

우리는 부평미군기지를 보면서 몇 가지 상식의 굴절을 경험하고 있다. 첫 번째 상식의 굴절은 주한미군기지는 대한민국 영토인데 대한민국 국민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북 칠곡, 경기도 부천과 파주, 강원도 춘천 등에서 미군기지 안에 고엽제 등 환경오염 물질이 대량 매립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평미군기지에도 고엽제와 폐차 배터리 등이 묻힌 사실이 밝혀졌고, 우리는 반환되기 전에 환경조사를 요구하며 미군기지 정문 앞에 농성장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한국경찰이 이를 막았다. 이유는 미군기지 정문 앞은 ‘미군기지 영내’라는 것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건너편 동아아파트 쪽에 농성장을 차려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지 앞에서 시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가운데 미군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는 군사훈련이 벌어졌다. 한국 국민들을 테러범으로 가상한 훈련이었다. 우리는 주한미군기지는 물론 주변에서조차 어떤 주장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두 번째 상식의 굴절은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다. 주한미군을 위한 정부인지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헷갈린다. 칠곡 캠프캐럴에서 환경조사가 이뤄지는 방식은 한미 합동조사다. 물론 시민단체의 참여는 아주 제한적이다. 이를 총괄하고 있는 곳이 국무총리실이다.

관련부처는 환경부와 국방부고. 부평미군기지 시민대책위는 총리실과 국방부, 환경부에 부평미군기지의 한미 합동조사를 요구했다. 한나라당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으니 이명박 정부가 이쯤 되면 ‘주민들이 이렇게 요구하는데 조사를 해야 겠네’라고 할만도 하지 않나? 그런데 정부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드는 근거는 소파(SOFA)다. 소파 합의의사록 제3조 2항은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과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면 원인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그 책임을 묻는 국내법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독일에서는 ‘파견 당국은 위해물질 오염의 할당, 평가, 구제에 관련된 비용을 부담하고 독일 법에 따라 결정되는 비용을 신속히 지불해야한다’고 독일 국내법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물론 2002년 1월 18일 이후에 반환되는 미군기지가 오염됐을 경우에 그 치유와 정화비용은 주한미군이 부담해야한다. 단,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해당할 경우만. 현재의 소파는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규정으로 존재할 뿐이다.

부평미군기지는 일제강점기부터 병기창으로 사용됐다. 해방 이후 미군이 점령하면서 애스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캠프마켓(16만평)이 남아있다. 그 숱한 세월 동안 미군기지는 대한민국 땅이어도 한국 국민이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출입금지의 땅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캠프마켓이 군사기지의 기능을 잃으면서 1995년에 시작된 시민들의 반환운동으로 캠프마켓은 2008년까지 반환을 받아 시민공원으로 만들기로 약속한 땅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반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택미군기지로 옮겨가야 하는데, 아직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반환을 미루더니 이제 선심 쓰듯 캠프마켓 안에 있는 폐품처리장(7만평)을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그 부지만 먼저 반환하겠다는 모양이다. 오염된 채로 말이다. 한술 더 떠 2016년에는 나머지 땅도 오염된 채로 반환하겠다고 한다.

이제 한미 합동조사를 통해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의혹을 밝혀야한다. ‘청소하고 돌려주는’ 상식이 통하는 나라라면.

/이광호 부평미군기지 시민대책위 상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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