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예전엔 학자들이나 소위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일상 언어가 된 외래어가 있으니,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나라에서는, 현 정부여당과 ‘조중동’이라 불리는 거대 언론들이 ‘복지 포퓰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복지와 포퓰리즘이 마치 애초부터 같은 의미인 양 통용되고 있다.

일단 포퓰리즘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부터 알아보자. 포퓰리즘(=대중주의)은 인기영합주의 또는 대중영합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대중적인 인기,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대중을 호도해 지지를 이끌어내고 대중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려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복지란 사전적 의미만으로 보자면 ‘행복한 삶’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원적 가치인 행복이 어떻게 포퓰리즘과 동의어로 쓰일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여기서 복지란 사전적 의미보다는 ‘사회보장’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욕구를 사회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으로서의 복지 또한 포퓰리즘과 연관시키기 어렵다. 어쩌다가 이 나라에서는 ‘복지=포퓰리즘’이 되었을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한 술 더 떠 오세훈 서울시장은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복지와 포퓰리즘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오 시장의 무식함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넘어간다 치자. 광역단체장이 정책에 대한 조율을 하지 못한 채 ‘전쟁’ 운운하며 주민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하는 것까지는 한껏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게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이해해주려고 노력해 봐도 안 되는 게 오 시장의 그 다음 행보이다.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자체가 ‘나쁜’ 투표라며 투표 거부운동이 벌어지자, 오 시장은 운동권들이나 한다는 1인 시위를 하고 투표참여 독려 운동에 적극 나선다. 투표를 관리해야할 공직자가 특정 결과를 주장하고 유도하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다.

주민투표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는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주민투표에서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으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다. 아니, 누가 차기 대선에 나가라고 시켰나? 뜬금없는 대선 불출마 선언은 뭐니? 주민투표와 대선은 또 무슨 상관? 어이 상실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점입가경이다. 투표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분위기가 반전될 기미가 생기지 않자, 또 기자회견을 연다. 그러더니 유효투표율 33.3%가 넘지 않으면 시장 직을 내놓겠단다. 헉! 주민투표 발의를 시민들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서울시의 시정이 급식 관련 정책만 있는 것이 아닐진대, 선출직 단체장이 시장 직을 이렇게 함부로 걸 수 있다니 놀랍다. 이로써 오 시장은 이번 투표를 무상급식에 관한 투표가 아니라 오 시장에 대한 불신임을 묻는 투표로 변질시켜 버렸다. 주민도 발의하지 않았고 오 시장도 발의하지 않은 이상한 불신임투표의 탄생! 말이 안 나온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훔치고 무릎을 꿇는다. 아이고…, 기자회견 열어 눈물 흘리고 무릎 꿇는 건 보통,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이나 하는 쇼 아니었나? 공직자의 본분을 잊고 1인 시위에 기자회견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기까지, 이보다 더 버라이어티할 수는 없다. 도대체 그 다음은 어떤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으려나, 기대마저 생긴다.

복지와 포퓰리즘이 동의어인 양 대중을 ‘호도’하고, 전쟁에 세금 폭탄에 무시무시한 단어를 총동원해 대중을 ‘선동’하며, 시장 직으로 협박해 대중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오 시장의 주민투표야말로 포퓰리즘의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 거기에 1인 시위, 기자회견장에서의 눈물과 무릎 꿇기는 포퓰리즘의 버라이어티한 덤이다.

오 시장, 축하한다. 당신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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